되는 것만 있으면 무슨 재미

오늘은 수련에 무척 몰입했다. 사바사나를 기다리지 않으면서 매 순간의 아사나에만 집중하는 것은 내게 매우 드문 일인데, 어느새 수련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문득 사바사나 차례가 된 것을 깨닫고는 신기했다.

빈야사의 시작은 마치 아침 같다. 이불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어하는 우리들의 아침. 그러나 시작되고 나면 자연스레 흘러가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 빈야사는 하루
수련은 삶, 사바사나는 죽음

오늘 수련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던 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내 추측은 호흡이다. 지난주 어느 순간엔가 코 호흡법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늘 코 호흡이 얕고 부자연스러워 입으로 내쉬었는데, 지난주 수련 중 주변의 깊은 코호흡을 소리로 듣고 흉내 내다 보니 나의 코호흡이 거짓말처럼 깊어지는 어느 구간을 찾았다. 호흡이 깊고 길어지니 조금 더 근육으로 숨을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고. 오늘 수련에서는 역대급으로, 그 어느 때보다 깊게 다운독을 했다. 그래 봤자 나만 알아차릴 수 있는 미묘한 차이였을 텐데, 선생님이 그 순간 가만히 내 등허리를 두드려주고 지나갔다.

수련을 마칠 무렵, 불을 끄자 수련실이 어둑해졌다. 사바사나를 위해 매트에 누워 머리를 바닥에 대자, 편안한 기운이 몸을 감싸고 ‘아,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두 손을 가만히 배 위에 올려놓고 있자 선생님이 내 몸 위로 큰 사각 담요를 덮어주셨는데, 매주 하는 경험이었음에도 그날은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죽은 내 몸 위로, 누군가 따뜻한 천을 덮어준 기분이랄까. 무슨 감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감정이 분명하게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왜였을까?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그처럼 감각과 마음이 살아나는 경험 때문에 요가를 떠나지 못하나 보다.

더불어 오늘 수련을 통해 느낀 건,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어야 재밌다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다. 되는 것만 있으면 시시하고, 안 되는 것만 잔뜩이어도 재미가 없다. 보통 나의 수련은 안 되는 것만 잔뜩인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이 균형을 이루어서 도전할 맛이 났다. 그 도전 끝에 가만히 누워 휴식하는 것이 눈물 나게 달콤하고 편안했다. 오늘 수련은 잘 살고 잘 떠나는 법에 대한 배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가배도

스타벅스와 메가커피로 점령당한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그래도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 간격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곳. 하나은행과 라운지 공간을 쉐어하고 있어, 혼자 커피를 마시며 은행 업무를 보러 온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인간 군상에 대한 묘사가 필요한 작가라면 방문을 추천한다(?)

쓴 사람 | 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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