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indful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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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의 일기 Jiun Kim 선재의 일기 Jiun Kim

되는 것만 있으면 무슨 재미

오늘은 수련에 무척 몰입했다. 사바사나를 기다리지 않으면서 매 순간의 아사나에만 집중하는 것은 내게 매우 드문 일인데, 어느새 수련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문득 사바사나 차례가 된 것을 깨닫고는 신기했다.

빈야사의 시작은 마치 아침 같다. 이불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어하는 우리들의 아침. 그러나 시작되고 나면 자연스레 흘러가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 빈야사는 하루
수련은 삶, 사바사나는 죽음

오늘 수련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던 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내 추측은 호흡이다. 지난주 어느 순간엔가 코 호흡법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늘 코 호흡이 얕고 부자연스러워 입으로 내쉬었는데, 지난주 수련 중 주변의 깊은 코호흡을 소리로 듣고 흉내 내다 보니 나의 코호흡이 거짓말처럼 깊어지는 어느 구간을 찾았다. 호흡이 깊고 길어지니 조금 더 근육으로 숨을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고. 오늘 수련에서는 역대급으로, 그 어느 때보다 깊게 다운독을 했다. 그래 봤자 나만 알아차릴 수 있는 미묘한 차이였을 텐데, 선생님이 그 순간 가만히 내 등허리를 두드려주고 지나갔다.

수련을 마칠 무렵, 불을 끄자 수련실이 어둑해졌다. 사바사나를 위해 매트에 누워 머리를 바닥에 대자, 편안한 기운이 몸을 감싸고 ‘아,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두 손을 가만히 배 위에 올려놓고 있자 선생님이 내 몸 위로 큰 사각 담요를 덮어주셨는데, 매주 하는 경험이었음에도 그날은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죽은 내 몸 위로, 누군가 따뜻한 천을 덮어준 기분이랄까. 무슨 감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감정이 분명하게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왜였을까?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그처럼 감각과 마음이 살아나는 경험 때문에 요가를 떠나지 못하나 보다.

더불어 오늘 수련을 통해 느낀 건,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어야 재밌다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다. 되는 것만 있으면 시시하고, 안 되는 것만 잔뜩이어도 재미가 없다. 보통 나의 수련은 안 되는 것만 잔뜩인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이 균형을 이루어서 도전할 맛이 났다. 그 도전 끝에 가만히 누워 휴식하는 것이 눈물 나게 달콤하고 편안했다. 오늘 수련은 잘 살고 잘 떠나는 법에 대한 배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가배도

스타벅스와 메가커피로 점령당한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그래도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 간격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곳. 하나은행과 라운지 공간을 쉐어하고 있어, 혼자 커피를 마시며 은행 업무를 보러 온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인간 군상에 대한 묘사가 필요한 작가라면 방문을 추천한다(?)

쓴 사람 | 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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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의 일기 Jiun Kim 선재의 일기 Jiun Kim

슬픔에 좋은

똠얌꿍은 슬픔에 좋다. 시큼새큼한 맛과 강한 향은 어지러운 마음을 잡아준다.

엄마와 눈을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도 슬픔에 좋다. 엄마와의 순간은, 오랜만에 해외로 짧은 휴가를 떠난 직장인이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걸 진심을 다해 아쉬워하는 것과 같이 소중하고 애틋하다. 슬픈 마음도 엄마와 진심으로 나누고 나면, 무거운 감정은 아래로 가라앉고 따뜻한 다짐과 위로가 가만히 차오른다. 그러면 숨이 좀 쉬어진다. 나는 어쩌면 나보다도 엄마를 더 걱정해서, 평생 엄마를 걱정하느라, 걱정하면서 살 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더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어쩔 때는 내가 무너지지 않고 살 수 있다. 엄마를 평생 걱정하느라 나는 바쁘고, 열심히 산다. 그냥 대부분의 시간에 엄마를 걱정하면서 산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상담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 엄마는 나보다도,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중에서도 가장 강한 사람인데도 그렇다. 엄마 걱정은 그냥 나의 습관이고, 내가 거친 삶에 맞서는 무기이고, 방어기제다.

엄마가 인생 최고의 만찬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어느 날엔가 집에 돌아왔더니 아빠가 온 주방을 엉망으로 만든 채 배시시 웃으며 가리키던, 바삭히 튀겨낸 조기라고 했다. 엄마가 말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몰랐을 기억을 공유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라져 버리기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이니까. 그렇게 영영 내가 듣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이야기가 혹시 또 있을까, 나는 가끔씩 조바심이 묻은 여러 질문들을 엄마에게 습관처럼 건넨다. 

아빠가 살아 있을 때가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이라는 건 놀랍다.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아빠는 정말 신나 했겠지. 온갖 최신 기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니까. 코인이 있는 세상을 아빠가 맛보지 않고 떠난 것은 다행일 지도 몰라. 엄마와 나는 농담도 한다. 그러다 엄마가 말한다. 떠난 사람 이야기는 안 하고 사는 집도 있다던데. 나는 이렇게 너랑 아빠 얘길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엄마는 평생을 본인이 아빠를 데리고 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빠가 그 넓고 무던한 마음으로 뾰족했던 엄마를 품고 살았던 거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예민하고 뾰족했던 자신이, 네 아빠를 만나 많이 둥글어졌고, 그렇게 많이 둥글어진 덕분에 지금 이렇게 주위에 좋은 사람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거라고 했다.

아빠가 떠나고 몇 년 간은, 엄마가 살고 싶지 않아 할까봐 겁이 났다. 다행히 이제 그런 걱정은 없다. 엄마의 건강 걱정, 내가 엄마에게 보답하고, 엄마를 원없이 호강시켜줄 기회가 내게 오래 남아있길 바라는, 뭐 그런 조바심이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은퇴를 하고, 언젠가 할머니와 반야도 떠나고, 지금의 것들이 한 차례 모두 흘러가고 나면, 그 애도를 충분히 갖고 남은 삶에선 어떠한 것도 책임질 필요 없이 홀가분한 기분으로 영어 공부도 하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프랑스 자수도 배우고 싶댔다. 산티아고도 가고 싶고, 통영 동피랑 마을도 가고 싶고, 집도 오직 엄마의 취향대로 꾸미고 살고 싶댔다.

나는 그래서 엄마가 그렇게 꼭 살게끔 도우려고 한다. 그렇게 돕기 위해, 내 시간과 에너지와 돈 중 일부를 적금처럼 아껴두려고도 한다. 엄마에게도 말했다. '엄마, 나는 아이 안 낳고 살기로 했거든. 일 년에 두 번씩 여행 다니고, 새로운 것도 계속 배우고, 공부하고, 그렇게 살기로 했어. 우리가 아이 낳지 않아서 아끼는 돈과 에너지, 시간은 가족들에게 더 쓰기로 했어. 그러니까 걱정 마. 건강만 해. 남은 생은 점점 더 편하고 점점 더 좋아지게만 해줄게.' 어렸을 땐 집도 사주고 차도 사준댔지만 아직 그건 못했다. 머리가 좀 크고 나선 이런 약속을 할 여유가, 준비가, 자신이 없지만 이제는 마음의 여유가 분명히 있고, 자신 있는 것까진 아니어도 각오는 되어 있다. 그래서 엄마에게도 미리 말해준다. 너무 오래 아껴두지 않고. (오래 아껴두는 것은 똥이 되기 때문이다.)

살아 있을 때,

그러니까 어떤 마음이 살아 있다거나, 눈빛과 감정, 감각 같은 것들이 생생히 살아 있을 때,

소중한 사람이 바로 옆에 살아서 함께 하고 있을 때,

그런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마음을 전하고, 질문하고, 들으며 살려고 한다. 

이걸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 당연한 줄 알고 누렸던 존재가 주는 든든함과 행복이 내게 공백이 된 것을 목격할 때 슬퍼지는 순간이 가끔은 여전히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겪었던 그 모든 일을 지나오며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를 보는 눈, 진심으로 같이 공감하고 울어줄 수 있는 마음, 현재 이 순간에 더없이 감사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게 된 것에 감사하다.

이렇게 나의 현재에 감사하다 보면, 슬픔도 조심히 자리를 비켜주듯 물러간다.

📌  파오리
약수역 도로 앞에 우아하고 소담하게 위치해있는 작은 카페. 탁 트인 통창 앞에 앉아 약수동의 느긋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도 덩달아 부풀어난다. 사장님이 논커피에 대한 갈증에서 시작하신 카페라고 하는데, 아이스 커피 맛도 훌륭하다. 아침에 가도 좋아요.

쓴 사람 | 이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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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동 수엠부를 아시나요?

내게 인도/네팔 커리는 특별하다. 누군가 식사 메뉴로 ‘인도 커리’(표기법을 고민하다가 깨달은 건데 막상 유명한 식당은 ‘네팔 음식점'이라고 표기된 곳이 많은 반면, 사람들은 모두 인도 커리라고 부르지 네팔 커리라고 부르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의 제안을 표현하는 부분이라 인도 커리라고 씀.) 를 권했을 때 한 번도 ‘당기지 않는데' 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히려 더 보편적이거나 안정적일 것 같은 라면이라든지 찌개 혹은 햄버거 같은 것들은 날마다 그 메뉴에 대해 구미가 당기는지 여부가 매우 확실하게 나뉘는 편이라면, 인도/네팔 커리는 희한하게 다른 것들에 대한 상상을 모두 덮어쓰기 하는 힘을 가졌다.

그렇게 좋아하는 만큼, 동대문의 히말라야부터 이태원의 아그라 등, 인도/네팔 요리로 유명한 식당은 제법 가보았지만 지금까지 마음 속 일 등은 ‘수엠부'라는 작은 식당이다. 서강대학교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 신수동의 이 작은 네팔 식당은, 나와의 역사가 이제 10년을 넘어가는 곳이며 동시에 많은 이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수엠부를 운영하는 사람(혹은 가족)이 수차례 바뀌었는데, 처음에는 주인이 계속 바뀌는 거라고 생각했으나 이야기를 나누어본 결과 수엠부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주인이, 요리를 하고 전반적인 식당 살림을 할 사람(가족)을 고용하면 그들이 실질적인 식당 운영을 하면서 월급을 받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하며 다음 사람을 구하는 식의 구조였다. 

맨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게 되고는 조금 씁쓸했지만, 이내 그 씁쓸함은 ‘그렇다면 그렇게 여러 번 사람들이 바뀌는 동안 너무나 알맞고 적당한 커리의 간이나 난의 굽기, 푸짐함 같은 것들은 어떻게 유지되어 온 걸까?’라는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같은 재료와 양념을 쓰는 엽기떡볶이나 교촌치킨 같은 체인점에서도 지점마다 미묘하게 다른 레시피나 재료의 양, 감칠맛 같은 것들을 캐치해내는 세상에서, 몇 번씩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바뀌는 동안 수엠부가 그냥 기복 없이 수엠부일 수 있는 이유는 뭐였을까. 

이 쓸데없는 궁금증은 여러 가설로 이어졌는데, 그중 하나는 이것이다 : 손님들이, 수엠부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그저 ‘네팔 현지인들’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더 깊은 관찰이나 인식을 하지 않는, 어떤 종류의 의도치 않은 무심함과 무지한 태도 때문일 지 모른다(!)

이를테면 매일 가던 백반집 사장 할머니가 갑자기 어느 날 안 보이고 서툴러보이는 젊은이가 사장 행세를 하며 부엌을 쏘다니고 있으면, 갑자기 오늘따라 국이 싱겁거나 계란말이가 퍽퍽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효과가 있지 않은가. 만일 위에서 내가 제시한 가설과 같이 사람들의 무지함 혹은 무심함이 실재한다면, 수엠부의 맛이 사람 따라 조금 바뀌거나 기복이 있다고 해도 ‘주인이 바뀌어서 그래~’ 같은 류의 결론이나 정확한 인지 없이 그냥 어물쩡 넘어갈 수 있는 구조를 (의도치 않게) 갖추게 된 걸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뭐 그런 멀리 간 생각.

물론 이보다는 조금 더 무던하게, 그냥 수엠부에서 내놓는 요리가 대단히 특별한 맛이라기 보다는 요리 솜씨나 손맛이 조금만 있으면 구현할 수 있는 전형적인 요리라는 가설도 있다. (흠, 그렇다면 수엠부의 커리와 난이 왜 서울 대부분의 다른 가게들보다 계속해서 더 맛있고 훌륭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여러 엉뚱하고 이상한 가설들을 지나는 동안 스스로 깨달은 새로운 사실 하나는, 나는 원래 카페든 술집이든 식당이든 어떤 공간을 상상할 때 그 공간을 운영하거나 이끌어가는 사람을 무척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는 편인데, 수엠부에 대해서만은 놀라울 정도로 그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이나 인식, 같은 것이 적다는 사실이다. 10여년의 역사를 함께 쌓아왔다, 고 말하면서도 10여 년 동안 수엠부 부엌을 거쳐간 사람들의 얼굴이나 특징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데서 오는 조금의 놀람.

그 놀람은 그리고 자연히 이런 지점들로 연결된다. 수엠부는 엄연히 네팔 음식점이고 나는 수엠부를 가고 싶은 것인데도 자꾸 ‘인도 커리' 먹으러 가자고 한다든지, 치킨 티카 버터 마살라는 사실 영국의 대표 음식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인도 커리의 일종으로 알고 있다든지. 인도 커리가 맞는지 네팔 커리가 맞는지 정확히 분류하여 표기하는 대신 인도/네팔 커리라고 적당히 퉁치려 하는 나의 게으른 태도.

우선 이 글을 마치는 대로 인도 커리와 네팔 커리의 차이점을 검색해봐야 겠다. 그리고 조만간 수엠부에 가서, 앞으로 나와 새로운 수엠부 역사를 함께 할 얼굴들을 다정히 바라보고, 고유함을 발견하려 관찰해보고, 특징으로서 기억해보아야지.

📌  Reperk
무엇이든 빼곡하게 들어서있는 강남대로 한가운데, 흔치 않은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는 카페. 점심시간에 잠시나마 숨을 돌리고 싶을 때 통유리 옆에 앉아 햇살을 있는 대로 맞으며 에너지를 얻곤 했다. 어쩐지 여름 보다는 가을과 겨울에 더 어울리는 카페. 겨울이 끝나기 전에 가볼 것을 추천!

쓴 사람 | 이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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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친화적 꽃집

오늘은 어떤 종류의 자세랄까, 프로의식을 가진 꽃집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나는 10kg의 제법 묵직한 고양이와 동거 중인 반려인이면서, 동시에 꽃을 너무 좋아해 퇴근길이면 참새방앗간 처럼 꽃집을 들르는 인간이다. 고양이와 가족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무지한 것이 많아 취향대로 꽃을 사고 집에 들여놓았다. 그러나 고양이도 나도 나이를 먹고, 집사로 산 시간이 켜켜이 쌓여감에 따라 고양이는 각종 꽃과 풀, 그러니까 온갖 종류의 식물과는 도통 친해질 수 없는 상극의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꽃을 보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동네 꽃집에 불쑥 들러 만 원어치, 이 만원어치씩 포장재 없이 한두 다발 덜렁 들고 귀가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던 나는, 그렇다면 반려 고양이를 위해 꽃을 보는 삶은 포기해야 하는 걸까 문득 고민에 빠졌다. 그래도 드물게나마 고양이에게 무해한, 이를테면 장미 같은 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는 대신, 좀더 부지런해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꽃집에 가서 ‘고양이를 키워서, 고양이에게 무해한 꽃이 혹시 있나요?' 라고 묻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그러나 많은 꽃집이 고양이에 대해, 혹은 인간을 제외한 어떤 생명에게 유해하거나 무해한 꽃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간혹 핸드폰으로 검색하며 찾아주시는 정성을 보이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동네 꽃집은 꽃의 소비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기에 꽃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조건을 만족하면서 내 취향에도 맞는 다발을 만들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어떤 꽃집을 만났다. 고양이에게 무해한 꽃을 찾던 내가 장미 한 대 들고 허전히 돌아간 것을 기억하고는, 다음에 꼭 와주세요- 말하던 사장님. 어느 날 장미라도 하나 사가고 싶은 마음에 불쑥 말도 없이 들렀는데, 사장님이 기억을 하시고는 ‘고양이에게 무해한 꽃들 섹션'을 보여주셨다. “많진 않아요. 그래도 빨갛거나 분홍 장미는 싫다고 하셨어서 이 장미도 들여놨구요. 리시안셔스나, 여기 맨드라미도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 그래도 원래 들이던 루틴이 있으실 텐데 이렇게..”

사장님이 답했다. “아녜요. 생각해봤는데, 요즘 같이 반려동물하고 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꽃집 사장이라는 사람이 고양이나 강아지한테 뭐가 좋고 나쁜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되는 거더라고요. 이왕이면 모두에게 무해한 꽃이 많은 꽃집인 게 저도 좋죠.”

‘꽃집 사장이라면, 사람 뿐 아니라, 고양이나 강아지에게 어떤 꽃이 좋고 나쁜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그 말에 잠시 감동했다. 이어서 어떤 종류의 직업의식이랄까, 사장님께서 자신의 일을 대하는 자세, 그러니까 프로 정신을 읽었다.

누군가의 프로 정신은 역시, 감동적인 거구나! 그 앞에서, 상극 처럼 보이는 두 존재도 멋지게 공존하는 일이 기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나는 감히 그곳을 고양이 친화적 꽃집이라고 이름 붙인다. 

세상에 더 많은 고양이 친화적 꽃집이 생겨나기를!

📌  리버벨

시끌벅적한 사당역에서 조금 걷다 보면 나오는 ‘예술인마을' 초입에 조용히 위치한 카페. 통유리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커피 한 잔을 하면 마음도 덩달아 잔잔해지고. 비엔나커피와 티라미수가 가장 유명하지만, 나의 최애는 고소한 플랫화이트! 

쓴 사람 | 이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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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의 일기 Jiun Kim 선재의 일기 Jiun Kim

달의 기운을 가진 자

삶이 고달프다고 하소연했던 어느 저녁 자리에서 추천 받은, 사주팔자를 기가 막히게 본다는 곳을 장장 3개월 동안 기다린 끝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심각한 얼굴로 내 사주팔자가 적힌 종이를 가만히 보시던 선생님(이라고 부르겠다)이 조금은 생뚱 맞은 이야기를 꺼냈다. “달의 기운을 타고 났네요.” 달의 기운? 그게 뭐지? 고개를 갸웃대며 궁금해하는 내게 선생님은 짐짓 근엄히 물었다. “사람들이 달 앞에서 뭘 하죠?” 글쎄요. 소원 빌기..?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달만 보면 일단 빌고 봤습니다. 달 기운을 가졌다는 건, 내 안에 담긴 욕망과 바램이 아주 많다는 걸 말해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 분인 것 같네요. 그래서 힘든데, 그래서 살 맛이 나고 살 길도 거기에서 찾게 되는데 어쩌겠어요. 그런 걸 보통 팔자라고 부릅니다.”

보통은 불이다, 물이다, 이런 얘기만 나눴지 달 기운을 가졌다는 말은 처음 들어봐서 재미있네 하고 말았는데, 어쩐지 집으로 돌아와 바쁜 일상을 보내는 동안 그 말이 자꾸 떠올랐다. 그러네, 내가 이렇게 힘들고 고달픈 이유가 별 게 아니었구나. 결국은 하고 싶은 게 많고, 벌려놓은 것이 많아서, 나의 바램에 부응하느라 힘든 거였네. 그 생각을 할 때면 없던 힘이 조금은 나는 듯 했다. 결국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그것들을 다 해내보고 싶어서 이렇게 애쓰는 거라는 마음임을 알아차릴 때마다 얻게 되는 에너지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30대가 되었으며, 결혼을 하여 다정한 반려자와 한 마리의 뚱냥이(10kg)와 함께 하는 가족을 만들었다. 이 여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선택으로 인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선택에 함께 책임을 지고 함께 리스크를 감수하는 경험을 배우게 되었다. 혼자일 때는 오롯이 나 혼자 결정하고 나 혼자 책임지면 되던 일이, 이제는 내 선택이 직접적으로 누군가의 일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감각하게 된 것이다. 크 고작은 선택에 있어 나 뿐만 아니라 상대가 겪게 될 변화까지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것은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은 ‘달의 기운을 가진 자'에게는 꽤 실감 나는, 결코 가볍지 않은 변화였다. 체력 고갈과 에너지의 유한함은 나날이 크게 느끼는데, 커리어도 배움도 창작도 놓치고 싶지 않아 바둥대는 나로 인해 혹시 반려자가 외롭지는 않을까, 이 조각조각의 욕망들이 사실은 무엇으로도 수렴되지 못한 채 욕심으로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지극히 다정하고 나를 먼저 위해주는 반려자 앞에서, 내가 즐겨했던 그 ‘달의 기운'이라는 농담이 조금은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표현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너무 바쁜 것 같아서 미안해. 다음 달에는 이거 이거 이거를 꼭 조율해볼게.” 새벽 한두시가 넘어서까지 일하다 지쳐 퇴근하는 날이 이어지던 날이었다. 어렵게 꺼낸, 다소 풀 죽은 내 말을 들은 반려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선재가 힘들어서면 그래도 되는데, 나한테 미안해서라면 정말로 안 그래도 돼. 선재가 선재의 세계에서 열심히 하고 싶은 것들에 매진하는 것처럼, 나도 내 세계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열심을 다하고 있거든. 하루 8시간씩 요리를 하고, 테니스에 매진하고, 쇼파에서 하뚱이를 괴롭히기도 했다가, 틈 날 때면 서너시간씩 게임도 한다고. 자기와 나의 바램과 즐거움의 종류가 다른 것 뿐, 나도 충분히 열심을 다하고 있으니, 자기의 열심에 너무 미안해할 필요 없어!” 반려자의 다정한 변호를 들으며 생각했다. 내 안의 많은 바램과 욕망들을 욕심이 아니라 꿈이자 목표로 바라봐주는 이 사람에게 내가 느끼는 고마움과 감동 만큼, 이 믿음을 허투루 쓰지 말아야 겠다고. 지금은 여러 곳에 뿌린 씨앗에 물을 주고 가지치기를 하느라 너무 바쁘지만, 또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언젠가는 이것들이 정말로 여러 그루의 나무가 되어, 다양한 열매를 맺고 꽃을 피워 하나의 정원으로 우리의 삶에 다가와 줄지도.

이것이 단순히 나이브한 로망 만으로 남지 않게 하고자, 오늘 하루도 하루 치의 최선을 다해본다. 아마도 머지 않은 곳에 존재할, 수많은 ‘달의 기운을 가진 자’들에게 심심한 애정과 응원을. 그들 곁에 있을, 묵묵하고 든든한 반려자들에게는 결코 심심치 않은,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내는 밤이다. 

📌  알렉산더커피스튜디오

선릉 한가운데에서, 멜버른의 건강한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곳. 아침의 바이브가 특히 좋다. 매장에서 앉거나 서서 커피를 마시며 오가는 단골 손님들을 엿보다 보면, 핸드폰 없이도 책 한 권 없이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다. 프로다운 솜씨로 내려주시는 핸드드립 커피 또한 가히 일품! 

쓴 사람 | 이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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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야끼의 탄생

나쁜 습관은 힘이 세다. 마치 뇌 속에 고속도로가 매끄럽게 뻗어있는 것 같아서, 선택의 순간마다 미처 제어할 틈도 없이 그 방향으로 달리게 된다. 나 역시 여러 나쁜 습관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 그중 힘이 가장 센 것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잘못 든 식습관이다. 이를테면 나는 매일 퇴근 후 귀가 시간에 맞춰 배달음식을 시키는데 메뉴는 대부분 이런 것들이다. 마라샹궈, 엽떡, 아구찜, 치킨, 똠양꿍.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자극적인 것. 지친 하루 끝에 남은 마음의 잔여물들을 덮어쓰기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맵고 짜고 시큼한 것. 하루의 힘듦이 컸을 수록 보상심리도 덩달아 커져 어떤 날에는 엽기떡볶이와 치킨을 함께 시킨다. 당연히 혼자서는 먹지 못할 양이니 남은 음식들을 다 버리고, 다음날이면 새로운 것을 또 시키는 악순환이다.

그러다 얼마 전, 역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빨간 타코야끼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입술이 두툼한 분홍색 문어 인형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트럭이었는데 그 앞에는 족히 일곱 명 이상 줄을 서있었다. “타코야끼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저렇게 줄까지 서지?” 배달음식 어플에 ‘타코야끼'를 검색하자 별점이 만점인 가게가 두 개나 나왔다. 큰 고민 없이, 최소주문금액을 맞춰 타코야끼 15,000원 어치를 주문했다. 도착한 타코야끼는 그냥 그랬다.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타코야끼라고 할 수 있을 텐데도, 어딘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거긴 좀 다른가? 내일은 그 트럭에 가봐야겠어.’

다음 날 찾은 타코야끼 트럭은 역시 줄이 길었다. 30분쯤 지났을까, 내 차례가 가까워지고 나서야 트럭 안을 비로소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는데.. 당신은 혹시 아시나요? 밀가루 반죽과 말린 문어 조각이었던 것이 퐁실하고 온전한 타코야끼 한 알로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숙련된 손기술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지. 그 모든 순간을 지휘하는 사장님의 모습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거의 50분을 기다린 끝에 받아든 11알의 타코야끼 맛은 아아, 황홀했다. 집에 오는 동안 조금 식었을 텐데도, 한 알 한 알이 훌륭했다. 만족스러운 곡선의 타코야끼 한 알을 먹을 때마다 사장님의 몰입하던 눈과 손이 떠올랐다. 그렇게 교감하듯 타코야끼를 먹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본 나는 조금 깜짝 놀랐다. 내가 웃고 있던 것이다. 배달시킨 흰색 플라스틱 용기들 앞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맥주를 들이키던 얼굴과는 사뭇 다른, 어딘지 신나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만족스러운 평일 저녁식사가 참 오랜만이구나,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며 새삼 깨달았다. 

다시 찾은 타코야끼 트럭 사장님과의 대화에서 트럭이 매주 화,목,토요일에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적어도 일주일에 3일은 배달음식을 시키지 않게 되었다. 그 사이 나는 타코야끼가 탄생되는 것을 보며 멍을 때림으로써 힐링하는 것을 일컫는 ‘타멍'이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11알을 시키면 한 알을 서비스로 받는 단골이 되었다. 신기한 것은, 트럭이 오지 않는 월, 수, 금요일에도 하루 정도는 동네 시장에서 찬거리를 사와 차려먹는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타코야끼의 탄생을 관찰하고, 기다리고, 설레하며 집까지 품고 오는 시간들이 쌓여 내 안에 어떤 마음이 피어난 걸까? 꼭 직접 썰고 끓이고 요리하는 것까지가 아니어도 내가 먹을 것을 직접 포장 정도는 해오는 수고로움, 시간을 들여 메뉴를 정하고 기다리는 동안 생겨나는 기대감 같은 것들이 우리의 한 끼에 꼭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 카페 율곡 @yulgok.roasters

율곡 이이를 모티브로 한 동교동 카페. ‘현대의 선비가 있다면 이런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쓴 사람 | 이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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