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indful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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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의 일기 Jiun Kim 하윤의 일기 Jiun Kim

달을 따라 가다 보면

3월의 보름달을 만나러 평창의 어느 고요한 시골집에서 2박 3일간 머물다 왔다. 상업 시설이라고는 단 한 곳의 카페뿐, 구멍가게조차 없는 동네라 시내 마트에서 3일 치 식재료를 구입해 너른 하늘 아래 조그만 황토집에 도착했다. 실은 바로 그 비밀스러운 카페를 방문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대중교통으로는 영 가기 힘들어서 오래전부터 ‘가고 싶다’는 마음만 갖고 있었는데 마침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고민 없이 머물기로 한 것이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일기장이랑 책을 들곤 털레털레 걸어 나무 오두막을 닮은 카페로 천천히 들어갔다. 애정 하는 클래식 FM <세상의 모든 음악> 전기현 선생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부드러운 나무 내음과 함께 다가왔다.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오니 좋고, 근사한 솜씨로 나무를 무언가로 바꾼 풍경에 충만하다 못해 벅차올랐다. 출렁이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자 몇 번의 큰 숨을 내쉬고, 바 테이블에 앉아 둘레를 살펴보았다. 눈앞에는 작은 나무조각들이 있었다. 둥글게 깎은 윗부분에는 거친 나무껍질이 남아있었다. 그곳엔 작은 별 같기도 작은 생명의 발자국 같기도 한 동그라미가 총총총 줄지어 파여있었고, 평평한 아랫부분에는 손글씨로 문장이 쓰여있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은 그가 내 집 지붕 아래 있는 동안 그의 행복을 책임지는 일이다.’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사 바랭)

조그만 나무조각을 대수롭게 보는 사람, 구석구석을 사랑스럽게 들여다보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보물 같은 언어들. 이 나무를 깎은 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언어의 향기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비밀스럽게 속삭여주고 싶었나 보다. 나무로 만든 물건이 가득한 이곳에는 팔기 위해 만드는 손길이 아니라 정성껏 만들기 위해 만든 손길이 있다. 즐거워하는 천진한 미소가 보이는 손길. 그 조각들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굴려보고 있으니 ‘그렇지, 아름다움은 이런 거지.’ 고개를 끄덕인다. 복제된 그림 몇 천장이 아닌 손으로 그린 그림 하나, 나무를 조각하여 그 위에 잉크를 바르고 종이에 찍어내는 판화, 공장에서 몇 천 권 찍어내는 공책이 아니라 손으로 딱 한 권 엮어내는 공책, 건조한 문자메시지가 아닌 마음의 풍경을 닮은 엽서를 골라 한자 한자 손글씨로 쓰인 편지… 이곳의 아름다움은 그런 것이어서 구석구석 빠짐없이 음미하고 싶다.

사람들이 공간을 즐기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누구는 이 좁은 공간에서 더 좁은 공간인 스마트폰에 빨려 들어갈 듯 시선을 집중하고 있고, 누구는 미소를 띤 채로 벽 어딘가에 시선을 두며 자기에게만 보이는 것을 어여뻐하고 있고, 누구는 커피의 맛과 향에, 또 누군가는 공간지기와의 대화에 집중한다. 물론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는 이도 있다. 음미하고 향유하는 공간이 아닌 소비하는 공간으로 보는 사람이 그렇다. 커피의 맛이 어떻고, 공간이 어떻고, 운영방식이 어떻고… 비좁은 자기 세계의 틀을 넘어서지 못한 채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기 바쁜 그는 이곳이 놀이터임을 보지 못한다. 향기로운 공간은 향기로운 시선과 마음을 지닌 사람을 만났을 때 그 향기가 피어오르는 법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곳의 무엇에 집중하고 있을까?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맑은 영혼이 담긴 것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곳에 가득한 ‘만드는 마음’에 푹 빠져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나에게 말을 건다. ‘이래도 쓸모없다고 고개를 돌릴 테야?’ 쓸모없기에 쓸모 있는, 그런 이유로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그 아름다움’을 만드는 손길이 바로 내 앞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데!

황토집으로 돌아와 빵과 고구마를 굽고, 평창 목장에서 만들어진 요거트와 평창 사과를 꺼내 풍성한 저녁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사과는 끝물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오늘 수확한 사과라 그런지 아삭아삭한 식감에 달콤한 맛이 팡! 터져 나오는 게 까다로운 사과 애호가로서도 깜짝 놀랄 맛이었다. 평소와 다른 주방에서 요리를 하니 작년에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숙소에서 수십 가지 요리를 했던 시간들이 떠올라서 웃음이 났다. 인덕션도 못 다루고 오븐 사용법도 몰라서 엄청 헤맨 데다가 오븐에 구운 닭고기를 꺼낼 때 환기장치를 미리 켜놓지 않은 탓에 화재감지기가 끔찍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지… 고개를 황급히 젓게 되는 아찔한 실수들 덕분에 여행을 하면서 밥을 만들어 먹는 일이 한층 능숙해졌다.

음력 2월 14일, 보름달이 되기 하루 전 달은 황혼을 막 지난 짙푸른 하늘 가운데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존재로서 약간 찌그러진 보석 알의 모습을 하고 산 위로 떠올랐다. 달빛을 교란하는 인공 빛이 없고 하늘을 조각내는 건물이 없는 곳, 어둠에 고이 숨죽인 산과 나무들 위로 희미하고 영롱하게 달빛이 길을 내고 있었다. 잠에 들기 전까지 달과 별을 보기 위해 연신 들락날락했다. 문을 열면 순수한 어둠 속 자연의 보물들이 살랑살랑 춤추는 광경을 당장 만날 수 있다니, 이토록 쉽게 유유한 달의 헤엄을 바라볼 수 있다니… 그 향기로운 실감을 되풀이하며.

다음날 아침, 산 넘어 해가 환히 얼굴을 내민다. 일기를 쓰고 있는데 틱틱틱틱 소리가 나 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벌레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시골에서 벌레가 나타나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고개를 다시 돌려 일기를 이어 쓰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보다 격렬한 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 녀석이 발라당 뒤집혀서는 허공에서 발을 바둥바둥 휘저으며 생사를 오가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다 이내 지쳤는지 가만히 멈춰 있었다. 유심히 녀석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설마 죽은 건가?’ 싶어 퍼뜩 연필로 살짝 등을 건드려 원래대로 뒤집어주었다. 그러자 바닥에서 통! 가볍게 튀어 오르더니 뒤뚱뒤뚱 느릿느릿 그러나 녀석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묘한 기분이 들었던 건, 나의 무심한 손가락질이 녀석에게는 생과 사를 결정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작 나에겐 의미 없는 가벼운 손가락질일 뿐인데, 어쩌면 신과 인간의 관계가 나와 벌레의 것과 비슷하려나.

동네 이름은 <별천지 마을>, ‘별’이 많고 하늘(‘천’) 아래 첫 동네이며 연못(‘지池’)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 동네에는 연못 하나가 자리하고 있는데 개구리울음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연못에 다다르니 얼핏 보아도 수백 마리의 개구리가 헤엄을 치고 있었고 몇몇 개구리들은 돌 위에 앉아 개구리 알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는 순간 개구리들은 단숨에 울음을 멈추고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자취를 감췄다. 우리는 마을 구석에 있는 연못에서 마을 어귀로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느긋하게 걸었다. 오늘의 하늘에는 솜털처럼 툭, 툭 뜯어져 정갈하게 펼쳐진 양떼구름이 찾아와주었다. 본래의 하늘은 바다처럼 드넓다는 사실에 잠시 정신이 멍해진다. 마을 어귀에는 굵직하고 반듯하게 자란 소나무들이 모여있고 그 사이에 정자 하나와 의자 몇 개가 놓여있었다. 따뜻한 드립 커피를 홀짝이면서 솔향기 가득 머금은 푸른 바람을 맞으며 숨을 쉬었다. 마치 소나무들이 내쉬는 숨을 받아 마시고 있는 것 같다. 숲과 산에 있을 때면 가끔 나무의 숨이라 느껴지는 특별한 공기가 느껴진다. 그 숨을 받아 마시며 평평한 돌 위에 눕거나 나무에 기대 잠깐 잠에 들면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정신이 맑아진다. 나무의 숨을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퍽 뜨거워진 햇살을 받으며 산책을 하고 오니 몸 곳곳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시원한 물로 땀을 씻어내고 한지문을 열어 빛과 바람을 들이고 푹신한 이불을 깔고 털썩 누웠다. 하얀 이불로 몸을 돌돌 만 채 시선이 닿은 곳은 연푸른 봄 하늘에 펼쳐진 단정한 양떼구름. 문득 5년 전, 동해의 첫 집이 생각났다. 침대에 누우면 창밖으로 감나무와 새, 그리고 하늘만 보였지. 참으로 편안하고 달콤하여 유독 낮잠 자는 걸 좋아했더랬다. 우리 둘 모두 좋아하는 노르웨이 음악가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의 서정 소품집(Lyric Pieces)을 잔잔하게 틀어놓고는 바람에 실려오는 새소리를 자장가 삼아 푸른 하늘 아래 낮잠을 잤다.

점심을 먹고 어제와 같이 카페로 향했다. 오늘은 바 테이블 자리가 아닌 구석자리에 앉아 전기현 선생님의 목소리와 향기로운 음악을 들으며 오에 겐자부로 작가님의 책을 읽었다. 문장을 읽을 뿐인데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영혼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어떤 공간에서의 독서는 마음을 직접적으로 움직인다. 책마다 주파수가 맞는 공간이 있는 지도 모른다. 지난여름, 노르웨이 외딴섬에 있는 오두막에서 자발적으로 고립된 시간을 보낼 때 읽은 책 ‘고요’(silence)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온전히 살아있었듯, 공간의 주파수와 공명하는 책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향기로운 책은 많은데 향기로운 공간은 애써 찾지 않으면 쉽게 만날 수 없다. 향기로운 고독의 가치가 비근한* 세상은 아니니 말이다.

음력 2월 15일,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보름달을 기다렸다. 바다에서 떠올라 산 위로 올라올 때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달을 기다리며 서쪽 하늘 멀리 사라져가는 붉은 태양의 흔적과 동쪽 하늘에 드리운 어둠 속 사라지는 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달빛의 흔적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양떼구름 사이로 달의 머리가 떠오르고 어느새 산능선을 따라 데구르르 구르는 구슬 모양의 보름달을 마주했다. 달은 멈추지 않고 떠오르더니 하늘 높이 올라갔다. 산바람이 세차게 몸을 흔들어도 나의 시선은 요지부동이었다. 600m 높이의 시골 한가운데서 만난 달은 너무나도 제자리에 있었다. 모두가 밤의 이불 아래 가는 숨을 쉬고 있는 시간, 품을 수 없는 거대한 도화지에 오직 달빛 한 줌 동심원을 그리며 빛나고 있다. 동물원에 갇힌 새를 바라볼 때와 훨훨 하늘을 나는 새를 바라볼 때의 마음이 다르듯, 제자리에 있는 달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이 세상의 것들을 얼마나 제자리에서 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24절기를 만든 선조들은 늘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과 빛을 섬세히 헤아리며 시절에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일 년을 12개의 달로 나누고 시간을 시, 분, 초로 나눠 거기에 숫자를 붙여 인식한다. 숫자에는 경험도, 깨달음도, 과거와 현재의 연결도 담겨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숫자를 사용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지금 사람들은 직접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점점 더 빽빽해지고 높아지는 건물들은 하늘을 조각내고, 밤늦도록 꺼지지 않는 인공 빛은 밤하늘의 향기로운 어둠을 몰아내고, 탁해지는 뿌연 공기는 숨 쉬는 것을 괴롭게 해 너른 계절을 풍요로이 누리기보다는 비좁은 방안에 가둔다. 감각은 산란하여 점차 무뎌지고 보고 느끼는 방법조차 잊어버릴 위기에 처한 지금, 절기가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을까. 지금 여기, 이토록 거대하여 확실하게 압도하는 자연이 있는 곳에서나 절기를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스마트폰은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 부러 멀리한 건 아니고 스마트폰 속 세계가 재미없었다. 넘쳐흐르도록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땐 오감을 기록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하물며 그 작은 네모칸에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말고는 무언가를 하지 않았지만 많은 이야기가 일기장에 쏟아져 나왔다. 한순간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그리고 썼다. 그러면서 내 안의 지혜가 기지개를 켜고 자기 일을 하기 시작했다. 끈적한 마음의 짐을 산뜻하게 닦아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명료하게 나누고 지금 무엇을 하면 좋을지 들려주었다. 나는 그 지혜의 말을 부지런히 옮겨 적었다. 노르웨이 오두막에서 그러했듯 다시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리며.

* 비근하다 : 흔히 주위에서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알기 쉽고 실생활에 가깝다.

📌 스테딜리

주택가에 조용히 자리한 강릉의 작은 카페. 좋은 음질의 스피커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앤틱 가구와 편안한 조도의 조명을 통해 작은 방 같은 느낌을 준다. 늘 변함없는 사장님의 친절한 접객과 꼼꼼하고 정성스러운 커피 한 잔이 머무는 시간을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 이어지는 글은 단순한 진심 블로그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쓴 사람 |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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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의 일기 Jiun Kim 하윤의 일기 Jiun Kim

방망이 깎는 노인

2월을 돌아보면 쉬는 날 없이 거의 일만 하며 보냈다.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즐겨 찾는 카페를 가지 못했고, 저녁 시간을 함께 했던 책은 잠들기 전이 되어서야 잠깐 읽을 수 있었다. 한 달간 몰입했던 작업은 ‘인쇄’였다. 나는 손으로 노트를 만드는 일을 8년째 생업으로 하고 있는데 그동안 내지에 도트 그리드를 인쇄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쇄는 잘 모르는 분야였기에 나중으로 미루고 미루다 브랜드를 리뉴얼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인쇄를 마주하기로 했다. 을지로에 있는 여럿 인쇄소에 연락을 돌렸다. 전화하는 걸 힘들어하는지라 상담 채팅을 통해 원하는 바를 최대한 자세히 정리해서 보냈다. 다가온 결과는 무응답의 연속… 대부분은 메시지를 보고도 답장을 하지 않았고, ‘그런 인쇄는 하지 않습니다’라는 한마디 말만 듣고 대화가 종료되기도 했다. 어떤 곳에서는 무려 전화가 왔는데 다짜고짜 짜증을 내며 주문 포맷에 맞게 말하지 않으면 상담을 못한다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저기요, 저의 요구를 이해해 보려는 생각은 전혀 없나요…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멍하니 고개를 떨구었다. 원하는 바를 인쇄소의 언어로, 정해진 주문 형식에 맞춰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서 그 방법을 배워야 한단 말인가. 

인쇄는 출력과 다르다. 출력은 컴퓨터 데이터를 바로 프린터에 전송해 결과물이 나오는 방식인 반면, 인쇄는 우선 전지 사이즈의 인쇄판을 만들고 거기에 각 색상 잉크를 직접 도포해서 여러 페이지를 한 번에 인쇄하는 방식이다. 인쇄는 무겁고 커다란 기계가 필요하기에 공장식으로 운영된다. 즉, 출력은 소량 작업을 할 때, 인쇄는 대량 작업을 할 때 사용된다. 그런데 문제는 내 입장에서는 대량이라고 생각한 수량이 인쇄소에서는 극소량이라는 것이었다. 또 인쇄소에서 인쇄만 하는 경우는 드물고, 인쇄-재단-제본까지 올인원으로 진행해서 카탈로그 같은 책을 대량 제작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따라서 몇 부의 최종 결과물을 만들 것인지 말하는 것으로 주문이 시작되는데, 나는 내가 직접 제본을 해서 수제노트를 만드니 최종 부수를 굳이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전지 매수와 재단 사이즈, 그리고 인쇄 컬러만 말씀드릴 뿐이었다. 그러니 서로 소통이 안되고 답답할 수밖에. 그것도 한시가 바쁜 을지로 인쇄소에서!

대부분의 인쇄소는 현장에서 작업하고 있는 사람이 상담을 하기 때문에 상냥함을 바라기 어렵다. 상냥하다는 것은 말투의 상냥함만을 뜻하지 않는다. 상냥함이란 모르는 게 많은 고객의 질문에 차근차근 친절하게 답하는 태도를 말한다. 모른다는 사실로 인해 손님이 눈치를 보고 민망해하지 않도록 어떤 물음이든 환대하는 태도. 그러나 할 일이 다급하게 쏟아지는 현장에서 느긋하게 대답해 줄 여유가 어디 있을까. 혹은 화날 일이 있어서 부글부글 끓다가 그 마음이 어리숙한 고객에게 엉뚱하게 쏘아진 건지도 모른다. 나도 가끔은 피로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짝꿍에게 엉뚱하게 쏘아붙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우선 일기장을 펼쳐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반쯤 풀려버린 눈으로 다시 인쇄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전화할 용기는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절망한 채 책상에 엎드려있는 나를 안쓰럽게 여긴 짝꿍이 한 인쇄소에 전화를 걸어서는 원하는 바를 설명했다. 핸드폰 밖으로 쩌렁쩌렁 들려오는 목소리에서는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나 바쁘신지 3분 통화하는 동안 ‘난 너무 바빠요!’라는 말을 3번이나 하실 정도였다. 그렇지만 소장님은 우리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으시고는 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주문 형식에 대한 설명을 마치 랩하듯이 빠르게 설명해 주셨는데, 실은 받아 적는 것조차 어려웠다. 아무래도 내가 어떻게든 공부를 해서 이 업계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았다.

그날 이후 3주 동안 국내외 사이트를 속속들이 파헤치며 퍼즐 맞추기를 하듯 궁금한 부분들을 알아갔다. 일본어에서 파생된 업계 용어들을 익히고 인쇄의 원리를 이해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어떻게 하면 주문 형식에 맞게 기입할 수 있을지 공부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르는 것들이 많아서 소장님께 여쭈어보기로 했다. 여러 번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혼이 날 테니 궁금한 것을 한 번에 물어볼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했다.  단 한 번의 통화로 명쾌한 답을 얻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익힌 지식과 현장은 또 달랐다. 공부한 덕분에 이전보다는 그나마 소장님의 말을 간신히 이해하며 따라갈 수 있었지만 여전히 모르는 업계 은어들 투성이었다. 소장님의 말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나는 거세지는 그 목소리에 압박을 느껴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기계의 속도로 일하는 사람과 손의 속도로 일하는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있었다. 그런 우리 사이에 쾌적한 대화가 오고 갈 리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인쇄 작업은 오랜 소망이었고, 더군다나 인쇄를 해주시겠다고 한 유일한 분이었기에 나는 계속해서 경청하고 묻고 받아 적었다. 전화를 끊으니 온몸에 에너지가 모두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잠깐 이불 위에 엎드려 누워있다 일어나서는 인터넷을 뒤져가며 또다시 알 때까지 공부했다. 도움이 필요한 건 나니까 내가 그들의 언어와 규칙을 알고 따라야 했다. 이쯤 되니 나도 알게 된 것이 있었는데, 아쉬운 쪽이 참게 되고 바뀌려고 노력한다는 것. 그게 내 현실적 입장임을 받아들이니 사장님의 윽박이 더 이상 서럽지 않았다.

전화로 말을 주고받는 것은 다급한 탁구 경기 같다. 상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특히 업무에 있어서는 날아오는 공을 순간적으로 받아쳐야 하는 압박감이 불편해서 자꾸만 피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문의 게시판이나 카카오톡 채널에 글을 남기고 답변을 받는 쪽을 선호하는데, 인쇄 업계는 현장이 워낙 바빠서인지 글로 된 문의에는 대답이 시원찮았다. 어쩔 수 있나, 나도 탁구공을 던지는 수밖에. 상대방이 응답하지 않을 수 없도록 불쑥 전화를 걸어서는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방법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탕, 탁, 탕, 탁. 숨차게 탁구공을 주고받는 동안 쉬지 않고 이어지는 쩌렁쩌렁한 소리에 귀가 아팠다. 그러던 중, 몇 초간 낯선 정적이 내려앉은 순간이 있었다.

“그래, 다이어리를 만든다고요. 어떤 제본을 하고 접지는 어떻게 하려고요?”

“아, 네… 저는 수제노트를 만드는 데요.”

“그렇게 말하면 난 몰라요.”

“아, 네… 그 옛날에 책 만들던 방식인데요. 종이도 손으로 접고, 송곳으로 구멍 뚫고, 실로 종이 묶음을 꿰매서 책을 만들었잖아요. 저도 그렇게 노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허허, 참. 아니, 기계가 몇 초에 한 권씩 만들어주는데 왜 손으로 하고 있어요? 손으로 정확하게 접지도 못할 텐데…”

1초, 2초, 3초, 4초… 침묵이 이어졌다. 소장님은 할 말이 없다는 듯 나지막이 허허, 웃으셨고 나도 그냥 같이 허허, 웃고 말았다. 탁구공이 힘 없이 바닥으로 데구루루… 떨어졌다.

나는 왜 손으로 노트를 만들고 있을까? 소장님의 말마따나 인쇄부터 제본까지 몇 초 만에 완성하는 기계가 넘쳐나는데 나는 왜? 이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8년 전의 난 무슨 생각이었을까. 단순했다. 와르르 생산하고 와르르 소비하고 남은 건 저렴하게 팔아 ‘버리고’ 또다시 무언가를 와르르 생산하는 굴레에 얽히고 싶지 않다. 굳이 나까지 몇 천장의 종이를 써가며 만들 필요는 없다. 이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을지, 그전에 무언가를 만들 수나 있을지 몰랐다. 스스로도 불확실했기 때문에 짝꿍과 둘이서 소꿉놀이하듯 해왔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지, 이렇게 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른 채, 8년이 지났다. 

삶에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것,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상관없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해낼 수 있는 것, 예컨대 손바느질로 손수 옷을 짓는 일, 작은 텃밭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살뜰히 보살펴 수확한 식재료로 한 끼를 만들어 먹는 일, 나는 그런 일에 의미와 가치를 느낀다. 쉽게 해치우는 쪽보다는 만드는 과정의 지난하고 복잡한 지식을 익히고 매 단계마다 정성을 다해야 하는 쪽 말이다. 

‘한 권의 노트를 만드는 일은 한순간도 허투루 임해서는 안되는 참 느리고도 정직한 작업이구나.’ 수제노트를 만들 때마다 실감한다. 나는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그건 시간이 흐르며 손안에서 서서히 물성이 갖추어지는 과정 그 자체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무언가를 ‘만든다’고 할 때, 사람이 컴퓨터로 디자인하면 기계가 찍어내는 모습을 상상하지, 방망이 깎는 노인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건 만드는(make) 일이 아니라 생산하는(produce) 일이 아닌가? 기계로 대량생산하는 일이 손으로 만드는 일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두 일은 명백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만들고 싶다. 그런 내게 세상은 만들지 말고 생산하라고 한다. 그게 더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돈을 버는 방법이니까. 그렇게 물건을 ‘생산했을 때’ 나는 물건의 어디까지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쇄를 하는 날, 우리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서울행 KTX를 탔다. 인쇄는 5분이면 끝나니 굳이 확인하러 올 필요 없다는 소장님의 만류에도 우리는 색을 직접 보고 미세한 조정일지라도 원하는 색으로 확정 짓고 싶었다. 10시에 약속을 했으니 1시간 일찍 도착해서 든든히 아침을 먹고 인쇄소에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차에 타있던 8시 반, 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와서는 "어디예요? 최대한 빨리 와서 후딱 감리 보고 가요. 오늘도 너무 바빠요!”라고 재촉하셨다. 잠에 취해있던 정신이 번쩍 깼다. 빨리! 빨리! 재촉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뇌부터 발가락의 신경까지 뾰족하게 날이 서고 꼿꼿하게 긴장되는 걸 느낀다. 어쩌겠는가, 아쉬운 쪽이 맞추는 수밖에. 난 그저 소량의 인쇄를 맡아주시는 것에 감사해야 할 입장인걸. 잰걸음으로 인쇄소에 도착하니 거대한 기계들이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돌아가며 인쇄가 한창이었다. 매캐한 잉크 냄새와 인쇄기 돌아가는 소음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챙겨간 샘플들을 꺼내 차분히 비교해 보며 색을 확정 지었다. 그런 뒤 소장님의 사무실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말이 빠르고 성격이 급하긴 하시지만 직접 만나보니 참 친절하고 웃음도 많으신 분이셨다. 바쁘다는 말이 무색하게 1시간이 넘도록 그간 작업해온 인쇄물들을 보여주시며 40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는지 조언해 주셨다. 수제노트는 아름답고 의미가 있지만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니 기계가 만드는 노트도 생산해서 돈을 벌라고 하셨다. 사업적으로는 유용한 조언이었지만, 돈이 된다는 이유로 노트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수제’라는 방식만 고집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과정을 기계에 일임하는 건 여전히 원하지 않지만,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부분적으로 기계에 맡기는 방식이라면 만드는 이의 주체성은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두 달 동안 파묻혀있던 인쇄 작업에 마침표를 찍었다. 완전히 모르는 분야에 첫 발을 들이는 일이었기에 떨리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했다. 작업을 해내는 과정에서 혼도 나고 상처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버틴 덕분에 인쇄라는 그늘진 분야에 서서히 스며들어갔다. 그들의 언어와 속도는 나와 많이 달랐지만 맞춰가려고 노력한 덕분에 현장에서 소장님께서 쏟아내시는 말의 80%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나도 어느새 이 낯선 언어를 사용해서 소장님과 탁구공을 주고받고 있었다. 적어도 날아오는 탁구공을 놓치고 있지만은 않았다.

📌 하루 로스터리
주택을 개조한 카페로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아침 9시부터 열어주셔서 고요한 아침 독서를 할 수 있는 곳. 디카페인 핸드드립 커피가 카페인 커피보다 더 맛있었다!

쓴 사람 |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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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의 일기 Jiun Kim 하윤의 일기 Jiun Kim

달뜬 마음

무엇을 좋아하나요, 묻는다면 지금으로선 답은 하나뿐이다. 근 몇 개월 나의 삶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어느 날 아침, 왼쪽으로 볼록한 가느다란 그믐달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달을 언제 어디서 볼 수 있는지를 몰랐다. 달의 모양이 매일 달라지고 뜨고 지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도,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27일하고도 7시간 좀 넘게 걸린다는 것도. 태어난 이후 줄곧 달과 함께 했으면서 이토록 모르고 살았다. 왜 아무도 달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속삭여주지 않은 걸까.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달이 보이기라도 하면 그토록 반가울 수가 없었다. 뜨고 지는 시간을 예측할 수 있는 태양과 달리 달은 언제 나타나서 사라지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변덕스럽고 수줍은 달이 점점 더 궁금해져서 온갖 책과 인터넷을 샅샅이 찾아가며 알고 싶은 것들을 알아갔다. 누군가에게는 기본적인 상식일 수 있지만 내게는 모든 게 새로운 사실들이었다.

  달, 너는 누구니?

  고개를 들어 물은 순간, 달이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돌아가듯이 나의 삶은 달을 중심으로 궤도를 돌기 시작했다. 달을 사모하는 이는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 경건한 의식을 치른다. 해가 지고 검푸른 빛이 드리울 즈음 동쪽 바다로 간다.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붉은 보름달이 바다 위로 서서히,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떠오른다. 보름이 되기 한참 전부터 그날의 날씨를 살펴보고 언제 어디서 보름달을 볼 것인지 고민하고 장소를 찾아본다. 이번에는 어떤 보름달을 만나게 될까? 보름이 되기 며칠 전부터 생각이 온통 달빛으로 가득 차 있다. 바다 위로 보름달이 떠오르는 순간, 마음은 도통 가라앉지 못하고 흥분된다. 그런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있는데 바로 ‘달뜨다’이다. 달이 뜨면 ‘달뜬’ 마음이 된다. 이 단어를 만든 옛사람들도 달을 보며 달뜬 마음이 되었던 것일까? 이 글이 발행되는 2월 24일은 2월의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이므로 나는 검푸른 바닷가 어딘가에서 둥근 달을 경건하게 맞이한 순간부터 아침 해가 떠올라 달이 서쪽 너머로 희미하게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고 전송할 것이다.

  달은 나를 물리학으로 이끌었다. 과학에는 영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눈을 반짝이며 물리학 책을 탐독하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표현한 ‘아름다운’ 방정식들을 이해할 수 없어 그 단순한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겐 친절한 물리학 선생님들이 있다. 그들이 방정식이 어떤 의미인지 최대한 쉽게 풀어 설명해 주기에 나처럼 과학을 모르는 사람도 그 아름다움을 살짝 맛볼 수 있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까마득한 옛날부터 세상은 멈추지 않고 움직이며 질서와 무질서를 펼쳐왔다. 선생님들은 미시적 세계와 거시적 세계를 오가며 인간이 보는 세상과 본래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를  속삭여준다.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의 감각으로는 보지 못하지만 실재하고 있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선생님들조차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러나 실재하는 무언가가 눈앞에 얼마나 많을지도 생각한다. 과학은 인간의 무지를 깨닫게 하고, 인간이 얼마나 납작하고 단순하게 세상을 감각하는지 깨닫게 한다. 그런데 이 깨달음은 나를 무력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신선한 바람이 되어 숨통을 트이게 한다. 

  나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기독교 너머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울타리는 가족뿐이었고 안온한 울타리 너머로 나갈 이유는 없었으니까. 다만 일요일마다 교회에 갈 때, 여기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이 내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당연한 생각과 행동이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예컨대 헌금을 내는 일이나 친구나 모르는 사람을 전도하는 일 같은 것. 그러나 그런 불편함도 잠시, 일요일은 그저 가족과 함께 정다운 나들이를 다녀오는 날이었다.  

  모든 것이 달라진 건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인재를 양성하는 하나님의 대학’이라고 소개하는 이곳은 학교보다는 교회에 가까웠다. 생각과 태도, 관계 등 모든 것이 같은 믿음 아래 하나의 정답으로 존재했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 전부 나는 알지 못하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며 그의 가르침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어떠한 의심도 갖지 않고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공부를 할 때나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나 ‘하나님’이라는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 이곳의 생활이 괴이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의심은 순백의 믿음과 대비되어 매일 매 순간 불순하고 컴컴해졌다. 어쩌면 진짜로 이상한 건 나일지도 몰랐다.

  학교에 입학하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창조와 진화’라는 과목이었다. 세상의 기원과 지금에 이르게 된 과정을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과학을 전공한 교수님들이 매주 차례로 강단에 서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과정과 증거들을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그 열정적인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의문스럽기만 했다. ‘이건 증거가 아니잖아. 단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거잖아. 이런 걸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교수님들은 진화론에 대해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했고 나는 ‘납득이 안되는 건 진화론이 아니라 창조론인걸…’ 혼잣말하면서도 수업은 성실히 들었다. 그리고 열심히 암기해서는 높은 성적을 받았다. 시험을 마치고 문을 나설 때 ‘그래도 창조론은 아닌 것 같아.’라고 중얼거리며 걸어 나왔다. 마치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법정을 나오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혼잣말 한 것처럼. (사실 이는 전해져내려오는 이야기일 뿐 실제로 갈릴레이가 그렇게 말했다는 증거는 없다.) 

  이후 9년 동안 과학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 느닷없이 달에 푹 빠져 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 1956~)는 과학이란 ‘세상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확실한 대답이나 변하지 않는 사실을 발견하는 학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연구를 바탕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을 찾아내고 공유하며 불확실한 가운데 계속해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쌓아온 사실들이 단 하나의 발견으로 ‘아무것도 아니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지식의 가장자리, 그 경계 너머의 세계로 시선을 둔다. 안전한 믿음에 기대고 싶은 사람에게 과학이란 의지할 구석이란 없는 변덕꾸러기일 따름이다. 한편 먼지만큼 작고 하찮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아무리 알고자 해도 알 수 없는 지식의 한계를 정확하게 아는 용기가 있는 사람에게 과학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상의 속살을 보여준다. 

  내가 우주에 대해 한평생 알 수 있는 내용은 개미 발자국보다 작을 것이다. 그 ‘작고 적음’이 지금 무언가를 생각하고 공부하고 감각하는 것을 무상하게 만들지만 그게 허무하지는 않다. 과학은 끊임없이 ‘너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야’라고 말해주지만 나는 그 말이 믿음직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만나 의미 있는 질서를 만들고 그 의미 있는 것이 또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사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돌이켜보면 누군가의 믿음대로 세상을 설명해놓은 틀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암기하고 있을 때, 마음이 공허했고 세상은 흥미롭지 않았다. 나로서는 세상이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던 바와 얼마나 다른지 아무것도 믿지 않고 계속 알아가는 삶이 편안하다.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실에 가깝다면 그쪽을 선택하고 싶다. 확실하고 충분한 근거가 없다면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태도, 믿음이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냉소적인 태도는 어떤 환경에서는 ‘불순하다’고 불리지만, 어떤 환경에서는 ‘과학적’이라 불린다. 이제야 나는 나의 시각과 태도를 기꺼이 긍정할 수 있게 된 듯하다.

  5년 후, 나는 누구와 함께 있고,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지 모르고 짝꿍도 내 곁에 있을지 모른다. 언제든 누구든 나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도 그의 떠남을 기다리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5년 후, 여전히 이 세상에 살아있다면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때에도 나는 달을 보고 있을 거라는 점이다. 달은 지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내가 살아있는 시간은 달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일 테니 달이 지구를 더 이상 돌지 않는 세상은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아득히 먼 달의 시간과 감쪽같이 사라질 나의 시간을 생각한다. 달을 떠올리면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고, 곁에서 영롱히 수줍게 웃는 친구의 따뜻한 손을 잡는 기분이 된다. 달을 생각하면 불안하지 않다. 단 조금도.

📌 홈카페 with 명주상회 짜이 키트

명주상회 짜이 키트를 구입해서 집에서 진하게 짜이를 끓여마시는 걸 좋아한다. 내 입맛대로 짜이 블렌딩을 넣고 두유를 넣고 당도를 조절할 수 있기에 가장 믿음직스럽다. 명주상회 짜이키트는 향신료 향이 강하고 나는 어떤 음식이든 향이 독특하고 강한 쪽을 선호하기에 무척 만족스럽다. 구입은 명주상회에 직접 연락해서 할 수 있다.

@myungjusanghoe

쓴 사람 |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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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의 일기 Jiun Kim 하윤의 일기 Jiun Kim

떠나간 화살과 남겨진 활

긴 낮잠에 빠진 어느 날 오후, 꿈을 꿨다.

오랜만에 친정에 갔다. 문은 열려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평소 물건으로 꽉 차있는 우리 집답지 않게 집안이 휑했다. 막 이사를 간 집처럼. 어리둥절하며 집을 둘러보고 있는데 현관에서 손글씨로 빼곡한 편지를 여러 장 발견했다. 엄마 글씨였다. 엄마는 나와 동생, 아빠에게 긴 편지를 썼다. 그녀는 떠난다고 했다. 멀리, 여기서 아주 먼 곳으로. 자주 만나지 못할 거라 했다. 그래도 가끔은 우리가 어릴 적 갔던 찜질방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 했다. 더는 읽을 수 없었다. 손이 떨리고 눈물이 쏟아지고 다리는 힘이 풀려버리는 바람에. 엄마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구나. 아니, 엄마에게 다른 사람이 생길 리 없다. 그러나 정말 그럴 리 없을까? 엄마는 처음부터 나에게 ‘엄마’였으니 내 입장에서는 가능할 리 없지만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한 사람으로 보자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엄마는 지금 어디쯤 있는 걸까. 아빠는, 동생은 지금 어디에 있고 그들의 마음은 어디를 떠돌고 있을까.

엄마와 아빠가 갑자기 동시에 나타났다. 엄마는 내 앞에 아빠는 내 뒤에서.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왕 울음이 터졌다. 다시 보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 우릴 버리고 떠났다는 게 사무치게 원망스러우면서도 다시 나타나줘서 기쁜 울음이 터져 나올 만큼 고마웠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흐릿한 시야 속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꽂아 놓고 애원했다. 

그냥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아빠랑 함께 이 집에서 계속 살아주면 안 될까? 지금까지 잘 그래왔잖아. 응? 

엄마는 내가 모르는 표정을 하고 있었고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엄마는 그저 까마득히 멀어져 가고만 있었다. 뒤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건 말하지 말자… 체념한 듯 무거운 목소리였다. 편지를 다 읽고 나면 아빠 같은 목소리가 되는 걸까. 그러나 아빠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시야에서 엄마를 놓쳐버리면 영영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나는 아무 말 하지 않는 엄마에게 점점 뭉개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렇게 그 사람이 좋아? 우리를 버리고 갈 만큼?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이 점점 들어갔다.

그제야 엄마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누구랑 같이 사는 게 아니야. 혼자 떠나는 거야. 이젠 그래도 좋을 것 같아. 오랫동안 같이 살았으니까. 

나 어릴 적에 어른들은 종종 읽어낼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중요한 걸 잃어버린, 그러나 되찾기엔 이미 늦어버린 얼굴. 커다란 파도에 멀리멀리 휩쓸려가는 무력한 얼굴. 엄마는 그런 얼굴이었지만, 한 구석에서 환하게 떠오르는 노란 햇살의 빛깔이 어렴풋이 비쳤다. 아주 작고 희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빛이었다. 엄마는 미소 짓고 있었다. 슬픔이 있었지만 슬픔을 건너간 미소였다. 그 순간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이 풀렸고 눈물이 멈추었고 입을 다물었다. 그 어른의 표정을 하고 있는 건 나였다.

퍼뜩 눈을 떴다. 

여기는 어디일까. 낯선 방, 낯선 시간. 거친 숨소리와 빠르게 흔들리는 눈동자. 뿌연 시야에 한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왜 그래? 악몽 꿨어? 

꿈이었나. 꿈이었구나. 낯선 남자의 얼굴이 아니라 현우의 얼굴이구나. 그제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터지는 눈물처럼 이야기가 끝났다는 걸 알아차리고 난 뒤 숨이 차도록 엉엉 울었다. 어느새 눈물은 얼굴을 뒤덮었고 몸 깊숙한 곳에서 불이 활활 타올랐다. 현우가 연신 눈물을 닦아주었다.

엄마가 가족을 떠났어. 살아있는 데 떠났어. 혼자 살고 싶대. 그래서 떠난대. 엄마를 도저히 못 보낼 것 같은데 잡을 수가 없었어. 떠나지 말라고 말도 못했어.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떠나왔으니까. 떠나는 엄마에게서 내가 보였어. 

20년을 꼭 붙어있던 딸이 느닷없이 떠난다고 한다. 잡으려 하니 나를 좀 놔달라고 한다.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하고 가족의 울타리에서 안전하게 움직이라고 하니 그럴 수는 없다고,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단다. 눈물이 쏟아지고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아이의 손을 꽉 잡아보지만 아이는 손을 빼고 고개를 돌린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할 때면 절박하고 허무한 마음이 된다. 아이는 활을 떠난 화살 같아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앞만 바라보며 쏜살같이 날아갈 뿐이고 부모는 아득히 멀어져 가는 화살을 바라보는 활처럼 우두커니 서있을 따름이다. 

스무 살 이후 나의 삶은 가족으로부터 떠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대학교를 가면서 집을 떠나고, 유럽에서 살아보겠다며 떠나고, 돌아와서는 혼자 자취를 하겠다며 떠나고, 얼마 뒤 연인과 살겠다고 동해로 떠났다. 몇 년 뒤에는 엄마 아빠가 도리어 결혼을 부추겨 공식적으로 독립을 했다. 지금 나는 가족으로부터 떠나는 딸이 아닌 가끔씩 가족을 만나러 오는 손님 같다. 두세 달에 한 번 친정집에 들렸다 돌아갈 때면 엄마는 나를 꼬옥 안아주고 환하게 웃으면서 보내준다. 가지 말라고 두 손을 꼭 붙잡는 게 아니라 잘 가라며 웃으며 안아준다. 언젠가부터 엄마로부터 기꺼이 보내질 때마다 눈물이 비집고 나온다. 30년 동안 앞만 보고 날아간 화살이 이제야 활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게 아니면 이제는 엄마가 나의 화살이 되어 아득히 멀어져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떠나가는 사람이 아플까. 떠나가는 걸 바라보는 사람이 아플까. 처음으로 떠나가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비록 현실이 아닌 꿈이었지만 그것은 너무나 선명한 경험이었다. 이제는 너도 꽤 컸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떠나가는 사람을 바라볼 준비를 하렴, 삶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잠깐 바라보았을 뿐인데 이토록 울어버리고 만 걸 보니 나는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나 보다.

“아이들은 그대를 통해서 왔으며 그대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그대와 함께 있을 지라도

아이들은 그대의 소유가 아니다. (...)

그대는 아이들의 활이며, 

아이들은 그대를 통해서 살아있는 화살처럼 앞으로 나아가리라.” 

They come through you but not from you, 

And though they are with you yet 

they belong not to you. (...)

You are the bows from which your children 

as living arrows are sent forth. 

Kahlil Gibran의 『The Prophet』 <On Children> 中에서

📌 데자뷰 로스터리 @dejavu_roastery 

커피에 진심인 로스터리 겸 카페. 8종의 필터 커피와 에스프레소 메뉴 모두 본질에 충실하다. 사장님께서 고객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세심하게 추천해 주시고 커피 교육도 적극적으로 하신다. 최근 winter love 라는 이름의 블렌딩 원두가 출시되었는데 커피인지 와인인지 헷갈릴 정도로 특별한 맛이었다. 

쓴 사람 |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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