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 깎는 노인

2월을 돌아보면 쉬는 날 없이 거의 일만 하며 보냈다.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즐겨 찾는 카페를 가지 못했고, 저녁 시간을 함께 했던 책은 잠들기 전이 되어서야 잠깐 읽을 수 있었다. 한 달간 몰입했던 작업은 ‘인쇄’였다. 나는 손으로 노트를 만드는 일을 8년째 생업으로 하고 있는데 그동안 내지에 도트 그리드를 인쇄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쇄는 잘 모르는 분야였기에 나중으로 미루고 미루다 브랜드를 리뉴얼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인쇄를 마주하기로 했다. 을지로에 있는 여럿 인쇄소에 연락을 돌렸다. 전화하는 걸 힘들어하는지라 상담 채팅을 통해 원하는 바를 최대한 자세히 정리해서 보냈다. 다가온 결과는 무응답의 연속… 대부분은 메시지를 보고도 답장을 하지 않았고, ‘그런 인쇄는 하지 않습니다’라는 한마디 말만 듣고 대화가 종료되기도 했다. 어떤 곳에서는 무려 전화가 왔는데 다짜고짜 짜증을 내며 주문 포맷에 맞게 말하지 않으면 상담을 못한다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저기요, 저의 요구를 이해해 보려는 생각은 전혀 없나요…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멍하니 고개를 떨구었다. 원하는 바를 인쇄소의 언어로, 정해진 주문 형식에 맞춰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서 그 방법을 배워야 한단 말인가. 

인쇄는 출력과 다르다. 출력은 컴퓨터 데이터를 바로 프린터에 전송해 결과물이 나오는 방식인 반면, 인쇄는 우선 전지 사이즈의 인쇄판을 만들고 거기에 각 색상 잉크를 직접 도포해서 여러 페이지를 한 번에 인쇄하는 방식이다. 인쇄는 무겁고 커다란 기계가 필요하기에 공장식으로 운영된다. 즉, 출력은 소량 작업을 할 때, 인쇄는 대량 작업을 할 때 사용된다. 그런데 문제는 내 입장에서는 대량이라고 생각한 수량이 인쇄소에서는 극소량이라는 것이었다. 또 인쇄소에서 인쇄만 하는 경우는 드물고, 인쇄-재단-제본까지 올인원으로 진행해서 카탈로그 같은 책을 대량 제작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따라서 몇 부의 최종 결과물을 만들 것인지 말하는 것으로 주문이 시작되는데, 나는 내가 직접 제본을 해서 수제노트를 만드니 최종 부수를 굳이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전지 매수와 재단 사이즈, 그리고 인쇄 컬러만 말씀드릴 뿐이었다. 그러니 서로 소통이 안되고 답답할 수밖에. 그것도 한시가 바쁜 을지로 인쇄소에서!

대부분의 인쇄소는 현장에서 작업하고 있는 사람이 상담을 하기 때문에 상냥함을 바라기 어렵다. 상냥하다는 것은 말투의 상냥함만을 뜻하지 않는다. 상냥함이란 모르는 게 많은 고객의 질문에 차근차근 친절하게 답하는 태도를 말한다. 모른다는 사실로 인해 손님이 눈치를 보고 민망해하지 않도록 어떤 물음이든 환대하는 태도. 그러나 할 일이 다급하게 쏟아지는 현장에서 느긋하게 대답해 줄 여유가 어디 있을까. 혹은 화날 일이 있어서 부글부글 끓다가 그 마음이 어리숙한 고객에게 엉뚱하게 쏘아진 건지도 모른다. 나도 가끔은 피로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짝꿍에게 엉뚱하게 쏘아붙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우선 일기장을 펼쳐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반쯤 풀려버린 눈으로 다시 인쇄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전화할 용기는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절망한 채 책상에 엎드려있는 나를 안쓰럽게 여긴 짝꿍이 한 인쇄소에 전화를 걸어서는 원하는 바를 설명했다. 핸드폰 밖으로 쩌렁쩌렁 들려오는 목소리에서는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나 바쁘신지 3분 통화하는 동안 ‘난 너무 바빠요!’라는 말을 3번이나 하실 정도였다. 그렇지만 소장님은 우리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으시고는 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주문 형식에 대한 설명을 마치 랩하듯이 빠르게 설명해 주셨는데, 실은 받아 적는 것조차 어려웠다. 아무래도 내가 어떻게든 공부를 해서 이 업계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았다.

그날 이후 3주 동안 국내외 사이트를 속속들이 파헤치며 퍼즐 맞추기를 하듯 궁금한 부분들을 알아갔다. 일본어에서 파생된 업계 용어들을 익히고 인쇄의 원리를 이해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어떻게 하면 주문 형식에 맞게 기입할 수 있을지 공부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르는 것들이 많아서 소장님께 여쭈어보기로 했다. 여러 번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혼이 날 테니 궁금한 것을 한 번에 물어볼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했다.  단 한 번의 통화로 명쾌한 답을 얻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익힌 지식과 현장은 또 달랐다. 공부한 덕분에 이전보다는 그나마 소장님의 말을 간신히 이해하며 따라갈 수 있었지만 여전히 모르는 업계 은어들 투성이었다. 소장님의 말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나는 거세지는 그 목소리에 압박을 느껴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기계의 속도로 일하는 사람과 손의 속도로 일하는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있었다. 그런 우리 사이에 쾌적한 대화가 오고 갈 리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인쇄 작업은 오랜 소망이었고, 더군다나 인쇄를 해주시겠다고 한 유일한 분이었기에 나는 계속해서 경청하고 묻고 받아 적었다. 전화를 끊으니 온몸에 에너지가 모두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잠깐 이불 위에 엎드려 누워있다 일어나서는 인터넷을 뒤져가며 또다시 알 때까지 공부했다. 도움이 필요한 건 나니까 내가 그들의 언어와 규칙을 알고 따라야 했다. 이쯤 되니 나도 알게 된 것이 있었는데, 아쉬운 쪽이 참게 되고 바뀌려고 노력한다는 것. 그게 내 현실적 입장임을 받아들이니 사장님의 윽박이 더 이상 서럽지 않았다.

전화로 말을 주고받는 것은 다급한 탁구 경기 같다. 상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특히 업무에 있어서는 날아오는 공을 순간적으로 받아쳐야 하는 압박감이 불편해서 자꾸만 피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문의 게시판이나 카카오톡 채널에 글을 남기고 답변을 받는 쪽을 선호하는데, 인쇄 업계는 현장이 워낙 바빠서인지 글로 된 문의에는 대답이 시원찮았다. 어쩔 수 있나, 나도 탁구공을 던지는 수밖에. 상대방이 응답하지 않을 수 없도록 불쑥 전화를 걸어서는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방법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탕, 탁, 탕, 탁. 숨차게 탁구공을 주고받는 동안 쉬지 않고 이어지는 쩌렁쩌렁한 소리에 귀가 아팠다. 그러던 중, 몇 초간 낯선 정적이 내려앉은 순간이 있었다.

“그래, 다이어리를 만든다고요. 어떤 제본을 하고 접지는 어떻게 하려고요?”

“아, 네… 저는 수제노트를 만드는 데요.”

“그렇게 말하면 난 몰라요.”

“아, 네… 그 옛날에 책 만들던 방식인데요. 종이도 손으로 접고, 송곳으로 구멍 뚫고, 실로 종이 묶음을 꿰매서 책을 만들었잖아요. 저도 그렇게 노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허허, 참. 아니, 기계가 몇 초에 한 권씩 만들어주는데 왜 손으로 하고 있어요? 손으로 정확하게 접지도 못할 텐데…”

1초, 2초, 3초, 4초… 침묵이 이어졌다. 소장님은 할 말이 없다는 듯 나지막이 허허, 웃으셨고 나도 그냥 같이 허허, 웃고 말았다. 탁구공이 힘 없이 바닥으로 데구루루… 떨어졌다.

나는 왜 손으로 노트를 만들고 있을까? 소장님의 말마따나 인쇄부터 제본까지 몇 초 만에 완성하는 기계가 넘쳐나는데 나는 왜? 이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8년 전의 난 무슨 생각이었을까. 단순했다. 와르르 생산하고 와르르 소비하고 남은 건 저렴하게 팔아 ‘버리고’ 또다시 무언가를 와르르 생산하는 굴레에 얽히고 싶지 않다. 굳이 나까지 몇 천장의 종이를 써가며 만들 필요는 없다. 이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을지, 그전에 무언가를 만들 수나 있을지 몰랐다. 스스로도 불확실했기 때문에 짝꿍과 둘이서 소꿉놀이하듯 해왔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지, 이렇게 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른 채, 8년이 지났다. 

삶에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것,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상관없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해낼 수 있는 것, 예컨대 손바느질로 손수 옷을 짓는 일, 작은 텃밭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살뜰히 보살펴 수확한 식재료로 한 끼를 만들어 먹는 일, 나는 그런 일에 의미와 가치를 느낀다. 쉽게 해치우는 쪽보다는 만드는 과정의 지난하고 복잡한 지식을 익히고 매 단계마다 정성을 다해야 하는 쪽 말이다. 

‘한 권의 노트를 만드는 일은 한순간도 허투루 임해서는 안되는 참 느리고도 정직한 작업이구나.’ 수제노트를 만들 때마다 실감한다. 나는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그건 시간이 흐르며 손안에서 서서히 물성이 갖추어지는 과정 그 자체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무언가를 ‘만든다’고 할 때, 사람이 컴퓨터로 디자인하면 기계가 찍어내는 모습을 상상하지, 방망이 깎는 노인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건 만드는(make) 일이 아니라 생산하는(produce) 일이 아닌가? 기계로 대량생산하는 일이 손으로 만드는 일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두 일은 명백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만들고 싶다. 그런 내게 세상은 만들지 말고 생산하라고 한다. 그게 더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돈을 버는 방법이니까. 그렇게 물건을 ‘생산했을 때’ 나는 물건의 어디까지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쇄를 하는 날, 우리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서울행 KTX를 탔다. 인쇄는 5분이면 끝나니 굳이 확인하러 올 필요 없다는 소장님의 만류에도 우리는 색을 직접 보고 미세한 조정일지라도 원하는 색으로 확정 짓고 싶었다. 10시에 약속을 했으니 1시간 일찍 도착해서 든든히 아침을 먹고 인쇄소에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차에 타있던 8시 반, 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와서는 "어디예요? 최대한 빨리 와서 후딱 감리 보고 가요. 오늘도 너무 바빠요!”라고 재촉하셨다. 잠에 취해있던 정신이 번쩍 깼다. 빨리! 빨리! 재촉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뇌부터 발가락의 신경까지 뾰족하게 날이 서고 꼿꼿하게 긴장되는 걸 느낀다. 어쩌겠는가, 아쉬운 쪽이 맞추는 수밖에. 난 그저 소량의 인쇄를 맡아주시는 것에 감사해야 할 입장인걸. 잰걸음으로 인쇄소에 도착하니 거대한 기계들이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돌아가며 인쇄가 한창이었다. 매캐한 잉크 냄새와 인쇄기 돌아가는 소음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챙겨간 샘플들을 꺼내 차분히 비교해 보며 색을 확정 지었다. 그런 뒤 소장님의 사무실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말이 빠르고 성격이 급하긴 하시지만 직접 만나보니 참 친절하고 웃음도 많으신 분이셨다. 바쁘다는 말이 무색하게 1시간이 넘도록 그간 작업해온 인쇄물들을 보여주시며 40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는지 조언해 주셨다. 수제노트는 아름답고 의미가 있지만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니 기계가 만드는 노트도 생산해서 돈을 벌라고 하셨다. 사업적으로는 유용한 조언이었지만, 돈이 된다는 이유로 노트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수제’라는 방식만 고집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과정을 기계에 일임하는 건 여전히 원하지 않지만,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부분적으로 기계에 맡기는 방식이라면 만드는 이의 주체성은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두 달 동안 파묻혀있던 인쇄 작업에 마침표를 찍었다. 완전히 모르는 분야에 첫 발을 들이는 일이었기에 떨리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했다. 작업을 해내는 과정에서 혼도 나고 상처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버틴 덕분에 인쇄라는 그늘진 분야에 서서히 스며들어갔다. 그들의 언어와 속도는 나와 많이 달랐지만 맞춰가려고 노력한 덕분에 현장에서 소장님께서 쏟아내시는 말의 80%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나도 어느새 이 낯선 언어를 사용해서 소장님과 탁구공을 주고받고 있었다. 적어도 날아오는 탁구공을 놓치고 있지만은 않았다.

📌 하루 로스터리
주택을 개조한 카페로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아침 9시부터 열어주셔서 고요한 아침 독서를 할 수 있는 곳. 디카페인 핸드드립 커피가 카페인 커피보다 더 맛있었다!

쓴 사람 |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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