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indful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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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의 일기 Jiun Kim 지언의 일기 Jiun Kim

진실을 말하기

정말이지 생각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열 살 아이에게 물어봐도 그 나름대로는 이 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련하기 짝이 없는 (세 배도 더 산) 나는 머리로, 몸으로 알고 있다고 잘난 체 하면서도, 또 막상 상황이 닥치면 '이번만큼은 다르겠지. 생각대로 되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에 빠지고야 만다. 미칠 노릇이다.

최근에 일이 틀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미 수십 번은 엎어지고, 또 멤버가 바뀌고, 방식이 바뀌면서 진행되어 오던 프로젝트였다.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주말 아침에 미팅을 잡았다. 미팅을 앞두고 아침에 산을 걷고 돌아와 쑥차에 뜨거운 물을 부어둔 채 잠시 숨을 골랐다. 내 안의 목소리가 많은 것들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Sister True Dedication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가 한 법문에서 “두려움과 함께할 수 있다면 어떻게 행동할 건가요?” 질문을 던지는 부분을 찾았다. 눈빛, 목소리가 화면을 뚫고 나에게 닿았다. 순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두려워하고 있구나. 손끝 발끝까지 피가 통하는 느낌이 들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동료, 친구를 잃을 두려움. 생계 수단을 잃을 두려움. 진실을 충분히 말하는 일의 두려움. 또 진실을 마주하는 일의 두려움. 두려움이 한 줌 덜어져 있었다. 다 우려진 쑥차를 빈 찻잔에 따르고, 다기를 다루듯 마우스를 굴려 미팅 링크를 눌렀다.

미팅을 시작하고 단번에 눈에 들어온 것은 모두 부은 얼굴로 앉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주말 아침 10시 30분이었다. 우리는 적당히 느린 속도로 대화를 이어갔고, 나는 경직된 내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화면에서 얼굴이 보이는 창을 제거했다. 그제야 조금은 그들과 함께 있는 듯했다. 첫 몇 번의 상호작용에서 이걸로 끝이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다행이면서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발언할 차례가 왔다. 미리 메모해 둔 나의 입장을 천천히 살폈다. 횡설수설하고 싶지 않았다. 상대의 의견 중 몇몇 부분은 일방적인, 부당한 요구로 다가왔으며, 그걸 전달한 방식도 적절치 못하게 느껴졌다고 이야기했다. 괄호에 넣었던 상세한 나의 입장을 풀어내는 시간이었다. 내가 전하려 한 건 조금도 꾸미거나, 가리지 않은 내 솔직한 의견이었다. 업무에 대한 것이었고, 파트너십에 대한 것이었으며, 늘 그렇듯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상대가 한 실수도 많은 부분이 감정에 대한 것이었고, 그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나도 감정에 대한 부분도 이야기하려고 애썼다. 내가 말했다는 건 누군가 들었다는 것이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의 진실을 가만히 들었다. 회의 시작부터 우리 모두에게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었을 때 내게 말하지 못한 진실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때때로 쉬어 가기도 하고, 목소리가 떨리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했지만, 적당히 숨기거나 미사여구를 달지 않았다. 두려웠지만 멈추지는 않았고, 적당히 타협하지도 않았다. 진실을 충분히 말한다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었고, 숨통을 조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두렵고 무섭더라도, 함께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으며 조금 더, 조금 더 나를 내몰았다.

To lose the power of confrontation is to lose the power of unity.

대립할 힘을 잃는 것은 유대할 힘을 잃는 것과도 같다.
- 책 <그린라이트>


*

‘혹시 카드 아저씨인가?’

카드를 배송해 주시는 아저씨 전화를 번번이 놓쳤다가 최근 크게 한 번 혼이(아직도 억울하다.) 났던 지라, 전화가 오면 작은 두려움이 일어나는 걸 느낀다. 내 하루를 마음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로 묘사한다면 두려움과 두려움 사이를 갈지자로 걷는 모양일 것이다.

소중한 관계를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그저 그런 관계를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나는 왜인지 그런 것도 두려워한다.), 소속된 곳에서 쫓겨날 것에 대한 두려움. 거절과 배제에 대한 두려움. 평가에 대한 두려움. 인정받지 못할까, 아니 비난받고 평가받을까 두려움. 생계 수단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내가 아끼는 이곳이, 내가 아끼는 이 관계가 변화할까 봐 두려움. 진실을 말하는 일의 두려움. 또 다른 진실을 마주하는 일의 두려움. 지극히 사소한 두려움에 ‘이 정도쯤이야.’하고 콧방귀 뀌다 정신 차려보면, 거대한 두려움에 도망치는 나를 만난다.

그중에서도 진실, 특히 나의 진실을 말하는 일은 언제나 내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일은 무척이나 두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진실을 내 속이 후련할 만큼 드러내 보이고 싶었지만,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쓰기가 시시하고 재미없었던 날들을 돌이켜보면, 그때는 겁이 많아 움츠러들었던 시기였다. 너무 둘러 이야기하다 보니 부분적 진실이었거나, 너무 흐린 진실이었거나, 애당초 진실이 아니었다. 지금도 종종 그런 느낌을 받곤 한다.

어떤 대목에서는 부모님이 걸리고, 때로는 매주 보는 회원들이, 누군가와의 관계가 마음에 걸렸다. 때로는 그냥 ‘누군지도 모르겠지만, 누가 볼까 봐.’ 단지 그뿐이었다. 읽히기 위한 글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생각이 너무 급진적일까 봐, 누가 나를 틀렸다고 할까 봐, 진실을 표현하면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거나, 평가하거나, 오해할까 봐 두려워하는 줄 모르는 채로 두려워했다.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쓰기의 중요한 목표가 된다면, 그렇게 써낸 글은 모두 버려도 좋을 것이다. 틀림없이 재미도, 감동도 없을 것이다. (그런 글들을 많이 써봐서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나의 진실’을 충분히 열어 보이지 않고 누군가와 친구 될 수 있는가. 반대로 ‘그의 진실'을 마주한 적 없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진정으로 도타워졌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친구가 되고 싶을 수는 있지만, 그와 진정한 친구가 된 적은 없다. 진실을 충분히 보이지 않고는 진정한 연결을 경험할 수 없었다. 연결되려면 진실을 보일 힘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 진실을 내보이기를 쉽게 포기해 버려서는 안 된다.

두려워하면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진실을 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는 안전한 변두리에서 그저 그런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두려워하면서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진실을 꺼내둘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이것도 말이 쉽지, 진실을 꺼낸다는 건 어마어마하게 두려운 일이다. 그때 그 두려움을 헤쳐 나갈 유일한 동기부여책은 연결이다. 결국은 내가 원하는 깊이로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서다. 미래의 나에게 용기가 필요한 날이 온다면 말해주고 싶다. 진실을 내보이는 일이 아무리 두렵더라도 어찌 됐든 계속 꺼내보라고, 용기를 짜내라고 말이다.

📌 호랑이커피

서촌에도 호랑이 커피가 있다. 간판에는 'latte'라고 쓰여 있어서 혼란스럽지만 거기가 맞다. 진정한 라떼 맛집 다운 간판이다. 바깥은 고기 굽는 연기가 자욱하고 사람으로 붐비는 골목인데, 가게 안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신기한 공간이다. 안에는 친환경 건축 자재인 '헴프크리트'를 사용했다고 한다. 자리가 얼마 없어 매장 내부에서 마시려면 눈치 게임을 해야 한다.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곳이라 텀블러 할인 폭이 꽤 큰 것이 장점이니(감동!), 텀블러를 갖고 가서 테이크아웃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요가 아이템을 좋아한다면 근처 타하타, 부디무드라 등 쇼룸을 구경하다가 인왕산을 오르는 코스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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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의 일기 Jiun Kim 지언의 일기 Jiun Kim

목표: 니트 입기

 “집에 예쁘고 따뜻한 옷도 있는데 맨날 저지 소재의 맨투맨이나 후드 같은 것만 입네요.”
“그렇군요. 다음 주에 이 주제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봅시다.”
상담받고 돌아가는 길, 사게 되는 옷과 실제로 입고 다니는 옷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는 몇 년 전으로, 겨울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옷장에 톡톡한 니트가 많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니트를 입기가 힘들었다. '조금 엄살을 피우는 거 아닐까' 혹은 '모두가 그렇지 않나?'라고 합리화하느라, 니트를 입지 못하는 게 얼마나 실제적인 불편함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대체 니트를 입으면 어떤데, 하는 질문엔 답하기 어렵지 않았다. 몸에 닿는 느낌이 무척 불쾌하고, 자꾸만 소름이 돋았다.
20대 초중반까지 자주 입었던 코트는 세탁비닐까지 그대로 박제되어 본가 옷장에 나란히 걸려있었다. 영하 2~30도의 날씨에서도 몇 킬로를 걸어서 통학했던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는 어떻게 거기서 살았을까?' 스스로 의아해졌다. 영하 40도가 아니라 영하 4도만 되어도 이가 달달 부딪히는 추위로 느껴져서였다. 한겨울에 치마에 스타킹을 신고 나온 친구를 보면, 그 친구가 얼마나 추울지를 상상하고 오지랖 넓게 걱정하느라 정신이 빼앗겼다.
“아니, 이 날씨에 어떻게 그렇게 얇은 옷을 입고 다닐 수 있죠?”
“그 사람이 지언씨와 비슷하게 춥게 느낄 것 같나요?”
“네. 너무 춥잖아요. 날이.”
“그렇게 느끼지 않을 거예요. 고통스럽다면 그렇게 입을 수 없겠죠. 안 그런가요?”
“그런가요? 그 사람이 제가 느끼는 이 추위를 견디면서 입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그랬다. 애초에 이렇게 춥지도, 그 짧은 치마에 얇은 스타킹이 최소한 나만큼은 불편하지 않으니까 입겠다고 생각이라도 해볼 수 있을 터였다. 이제껏 내가 예쁜 옷을 입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예쁜 옷을 입을 수 없었던 거였다니. 심리 작업의 목표는 새삼스럽게도 ‘편안하게 예쁜 옷 입기'가 되었다.
*
가끔 본가에 들러 반가운 마음으로 마주한 엄마는 내가 입는 옷에 대한 코멘트로 첫인사를 대신하곤 했다.
“아이고, 왜 옷을 또 거지 같이 입었어!”
“엥? 하하. 뭐 그런 말을 해!”
가끔 엄마가 던진 말에 화보다도 실소가 먼저 터져 나왔다. 김'직언'이라는 별명의 소유자로서, 이 직언 DNA는 모전여전이었구나 했다. 이때 ‘거지 같이’는 ‘거지같다'할 때의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거지' 같다는 의미임을 감안하더라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자신이 입던 옷을 입기를 종용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디서(주로 홈쇼핑이나 신평화시장에서) 산 옷이라며 이번에 집에 오면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굳이 더 듣지 않아도 엄마가 무슨 옷을 건넬지 알았다. 니트였다. 엄마는 톡톡한 니트를 좋아했으니까. 엄마 본인이 니트 컬렉터다 보니, 어릴 때부터 그렇게도 니트를 입혔다. 회색 니트, 노란색 니트, 꽃 모양 단추가 달린 니트 카디건, 앙고라 털로 짜인 가려운 니트, 까슬까슬한 울 니트, 니트라면 무엇이든 옳았다. 돌이켜보면 엄마에게 니트는 걱정 섞인 사랑이 아니었을까. 어디서도 춥지 않길 바라는 마음 말이다.

그런 엄마의 마음과는 별개로, 내가 기억하는 한 난 늘 니트가 싫었다. 엄마와 달리 어린 시절 나는 늘 통통했고, 몸에 열이 많아 두꺼운 니트가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니트를 입으면 자꾸만 근질거렸다. 니트는 저지 같은 소재의 옷보다 몸매가 드러났고, 니트를 입은 내 몸이 별로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통통한 몸에 껴입은 니트 사이로 땀이 맺힐 때, 니트 입은 나를 거울로 볼 때 몸에 대한 수치심이 뿌리를 내렸다. 니트를 입을 때면 온몸을 벅벅 긁고 있는, 통통한 아이로 다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내게 주는 사랑을 받는 것도, 내가 나를 사랑하기도 어려웠던 그때로.

*
근 몇 년 동안 나는 예쁘고 싶지 않았다. 날 꾸며주고 싶은 마음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거기까지 힘을 뻗칠 에너지가 없었나, 거기에 쓸 돈이 없었나, 내가 나를 예뻐해 주기 어려웠나, 하면 셋 다였다. 우연히 오프라인 매장에서 가끔 옷을 구입하기는 했지만, 사면서도 내심 불필요한 소비로 느껴지곤 했다. 매장에 들어갔는데 아무 것도 안 사고 나오기가 애매한 분위기여서 사기도 하고, 시기심과 죄책감으로 옷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 사실을 감안하면 얼마 전 나를 위해 흔쾌히 옷을 산 것은 괄목할 만한 변화다. 마음에 딱 드는 옷을 나에게 사주고 싶어서 옷을 샀다. 대단한 옷은 아니었다. 근사한 자리에 입고 나가야 할 것 같은 옷, 잘 보이기 위해 입을만한 옷이 아니라, 매일 부담 없이 동네 산책할 때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가볍고, 피부에 닿는 촉감이 아기 옷처럼 좋고, 알록달록한 옷을 좋아한다는 것을, 또 그런 옷을 고르는데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입었을 때 나보다 더 나아져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들지 않는 옷이 좋고, 편하기만 하고 나 자신이 추레하게 느껴지지 않는 옷이 좋다.

산책 메이트 자네와 뒷산에 오르기 위해 빨간 바지에 노란 후드티를 입었다. 패션 아이템 중 신발을 가장 좋아하지만, 심각한 평발임을 알기에 예쁜 신발은 조금 포기하기로 했다. 내 골반과 척추의 바른 정렬은 너무 소중하니까 말이다. 늘 신는 튼튼한 운동화에 딱 나만큼의 부피로 감싸지는 옷을 입고 나서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적당히 타협한 옷차림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구나. 뒷산 개나리가 만개한 곳에서 곱게 사진도 남겼다.

이제 따뜻한 봄날에도 편안하게 니트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여전히 새삼스럽다. 원래의 목표가 편안하게 예쁜 옷(특히 니트) 입기였다면, 이제 목표를 조금 수정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예쁘게 편안한 옷 입기로. 그 편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거니까.

쓴 사람 | 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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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의 일기 Jiun Kim 지언의 일기 Jiun Kim

청소부

1/5

“이번에 미화원 아저씨 바뀌신 것 같더라.”

“또?”

이 동네에 살게 된 이래로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세 번 바뀌었다. 한 아저씨가 황급하게 수풀로 뛰어가는 장면을 보았고, 그가 지퍼를 잠그며 나올 때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근처에 공중 화장실이 없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의 일터에는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고, 그건 생각보다 흔한 일일 것이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후로 그분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쯤부터 청소하는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나이 지긋한 분이 새로 오셨고, 그는 늘 눈썰매 같은 것을 손목에 걸고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우리 집 앞의 엄청난 경사를 쓰레기를 싣는 기계가 감당하지 못한 게 틀림없었다. 썰매 같이 생긴 판판한 널빤지에 쓰레기를 나르면 동네에 ‘두두두'하고 콘크리트 바닥에 썰매 끄는 소리가 났다.

몇달 전부터는 익숙한 소리가 나지 않았고, 곧 새로운 얼굴이 보였다. 흰머리가 거의 없는, 건장한 청년이었다. 인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찰나, 제대로 접지 않고 버린 아몬드 빼빼로 통이 그의 손에 쥐여 있는 것을 보고 절로 고개를 돌렸다. 세 집이 사는 작은 주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쓰레기가 바닥에 널려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매일 보면서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 어느 화장실을 쓰시려나.

1/26

어떤 회사가 사내 의료진을 들여,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주사비만 내고 링거를 맞을 수 있도록 한다는 글을 봤다. 사회초년생 때 갑자기 열이 올라서 일하다 급하게 병원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오늘은 저 진짜 아프면 안 돼요. 중요한 일이 있어요.”

“아파도 되는 사람은 없어요.”

그 말에 합죽이가 됐다. 다시 회사에 와서는 처방받은 진통제를 여러 번 털어 넣었다. “아픈 건 안타깝지만 될 일은 되어야" 했기 때문에 유독 오래 일을 하고 퇴근했다. 그날은 회사에 보건실이라도 있어서 잠시 누워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치료해준다'는 행위는 똑같다 하더라도, 그 목적에 따라서 ‘아'다르고 ‘어' 다른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서가 아니라, 더 많은 성과를 내 회사에 이바지해야 하니까 가까이에 병원을 둔다는 사고방식은, 어쩐지 더 좋은 고기맛을 위해 사과를 먹이는 가축 농장을 떠오르게 했다.

이 건강 패키지에는 간단한 수준의 심리 지원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조치를 두고 회사의 ‘혁신'이라고 평가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꽤 많은 회사가 이미 의료 및 심리 케어를 지원하고 있다. ‘혁신은 무슨 혁신이야.’ 하면서도, 그 와중에 어쩌면 그 회사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가 나 같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1/17

저녁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아직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집에 가기에는 너무 시간이 빠듯한데다, 이따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가 이미 밤 9시 30분이었다. 한 참가자는 지난 주 내내 야근이 있었다면서도 명상을 열심히 해오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선생님인 내게 미안해했다. 다들 어떤 일을 하는지, 얼마나 버는지는 몰라도, 밤늦은 시간까지 일한다는 것만은 같구나. 8주 수업 중에 한두 번 정도는 회사 일로 참여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조지오웰은 한 수필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 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며,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라고 말했다. 그 와중에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나는 그들을 수업에서 자주 만났다. 그들은 나로서 살아가겠다며 눈을 부릅뜬 채, 회사가, 그리고 불안이 자신을 잠식시키지 않도록 애쓰며 살아가고 있었다.

A는 회사를 마친 후에 명상 수업에 간다는 것을,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심리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꺼내어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하루 치의 불순물을 비워내고 정리하고서는, 다음 날이면 허둥지둥 립밤을 주머니에 찔러놓고 출근하고, 그날 치의 할 일을 했다. 그는 그날 저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억누른 감정을 풀어내면서 우연히 찾아온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혔는지도 몰랐다. '내가 나를 위해 명상하는 걸까, 더 잘 생산해내기 위해, 회사를 위해 명상하는 걸까?'

수업을 마치고 대관한 공간에서 휴짓조각을 치우면서, 어쩌면 난 조금 다른 종류의 쓰레기를 치우는 자본주의 사회의 청소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대개 각자의 일터에서 시작된, 혹은 일터를 거쳐 온 마음의 짐을 두 손 가득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로 부지런히 그들의 짐을 함께 풀어내고 분리수거하고 또 비워내기를 반복했다. 가끔은 서로 매번 같은 청소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허무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차피 내일이 되면 또다시 쓰레기가 쌓일 것이므로, 이 일을 지금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데 합의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무언가를 사들이려면 치워야 한다. 물건을 찍어내는 수많은 회사들이 유지되려면 쓰레기를 치우고 보이지 않게 묻는 시스템이 정교하게 잘 돌아가야 한다. 명상과 자본주의는 낙산사에서 실리콘밸리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어떤 의미에선 명상과 자기 돌봄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품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일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를 돌볼 필요가 있고, 자기를 돌보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명상 선생님 내지는 상담사라는 이 직업도 이 사회가 이러한 모습으로 굴러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이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터가 많아진다면, 우리 곁에 서로 안전하게 연결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면, 사실 이 직업은 필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1/30
마라톤을 신청했더니만, 무료로 신문을 보내준다길래 아침마다 신문을 읽는다. (마라톤은 취소했지만, 신문은 계속 온다. 돈을 내라고 하려나?) 이런 기사가 있었다. 코로나 이후 우울증 등으로 치료받은 환자가 20대 사이에서 51% 늘었다. 지난해 교육부의 심리검사 결과에 따르면 대략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자살 위험군'이 7만 명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고, 자살 위험군보다는 덜 위험한 상태지만 상담, 치료가 필요한 '관심군 학생'은 25만 명에 달했단다. 저 학생들의 10년 뒤, 20년 뒤(부디 그런 게 있기를 바란다.)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나에게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저 학생들을 본다.

고여 있는 감정의 불순물들, 뜬눈으로 지새우는 밤들을 함께 견딘다. 흐린 눈으로 대충 보고 싶은 구석진 곳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날에는 쓰레기를 버리지도 못한 채 부둥켜안고 지내는 사람들을 보고서는 왜 제대로 비우지 않는지 답답해하다가, 이내 불쌍해한다. 내 쓰레기를 비우러 치료를 받고 오는 길이면, 그런 나를 불쌍해한다. 아주 가끔은 내일도 반복될 청소에 대해서 미리 걱정하고, 쓰레기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렇지만 쓰레기 앞에서 대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치고 꽤 유난스러운 글이다.) 그냥 오늘도 할 일이 많구나, 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오늘도 부지런히 비질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무엇보다 적당한 화장실이 있다는 것에 만족해 한다. 날 찾아오는 사람들처럼.

덧.

아직도 몇몇 심리학과 교수님들은 상담을 받으러 온 할머니를 부를 때도 반드시 ‘내담자'라고 부르기를 강조하고, 상담사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게 아님을 기억하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강의실 구석에서 혼잣말로 반박한다. 어떻게 우리만 자본주의를 피해 갈 수 있겠냐고, 그런 꼿꼿한 태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건 현장과의 거리임이 틀림없다고. 아무리 꼿꼿하게 턱을 치켜들어도, 사람들에게 눈물을 훔칠 휴지를 건넬 때, 환불 요청에 응할 때, 내가 정직한 서비스직 감정 노동자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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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의 일기 Jiun Kim 지언의 일기 Jiun Kim

더 많이 좋아하기 위해서

12월 꽤 긴 휴가를 떠났다. 휴가지에서 맛있는 식당 보다는 훌륭한 커피집 물색에 여념이 없던 나는, '왜 맛있는 커피에 이렇게 집착하고 있지?'하는 생각에 빠졌다. 피에 목마른 뱀파이어처럼 눈이 뒤집혀 있다니. 나는 커피를 어째서 이렇게 좋아하게 된 걸까? 아니, 사랑에 빠지듯 좋아하게 된 걸까, 아니면 좋아하기로 굳센 결심이라도 했던 걸까.

대학교 때 학교 근처에는 카리부 커피가 많았다. 미네소타의 콩다방쯤 될까? (별다방은 이미 많았다) 공항에도, 몰에도, 학교에도 카리부 커피가 있었다. 거기서는 늘 핫초코를 마셨다. 겨울이면 영하 40도의 추위로 유명한 지역답게 다들 핫초코에 진심이라서, 초코의 선택지도 화이트, 밀크, 다크 3가지나 됐다. 각각 다른 초콜릿을 녹여서 따끈한 우유에 섞어줬다. 진짜 초콜릿이 든 핫초코라니, 맛이 없을 수 없었다. 크.
핫초코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침 8시 수업도 갈만했다. 날이 추워지면 아침 대신에 늘 핫초코를 마셨고, 덕분에 매장에 들어가면 나를 본 바리스타가 오더를 넣어둘 지경이었다. 아침 8시 수업이 있었던 그 한 학기 동안 약 5킬로가량 체중이 불었다.
그렇게 카페를 드나들면서도 한 번도 커피를 사러 간 적은 없었다. 내가 늘 핫초코에 진심이었다면, 같이 드나들던 친구는 블랙커피를 달고 살았다. 그 친구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방 옆 칸에 쿡 찔러놓은 큰 텀블러가 떠오른다. 혀가 델 정도로 뜨거운 블랙커피를 선호했는데, 나로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픽업 대 앞에서 물었다.
“커피의 매력이 뭐야?”
“사실 매력으로 먹는다기보다는, 생존이지.”
어째서 생존을 위해 핫초코가 아닌 블랙커피를 택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핫초코는 연료로서의 기능도 뛰어나지 않나.

교환학생으로 몽펠리에에서 학교에 다녔다. 기숙사 1층의 카페테리아에서는 매일 아침 뺑오쇼콜라 혹은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를 줬다. 늘 같았다. 하루는 뺑오쇼콜라에 에스프레소. 하루는 크루아상에 에스프레소. 과일이나 채소 하나 없이 생 위(?)에 버터와 커피를 들이부으면 잠깐은 프랑스인이 된 것처럼 낭만에 젖을 수 있었으나 속이 좀 많이 쓰렸다. 생애 처음으로 어쩔 수 없이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이다. 블랙커피도 못 마시는 주제에 에스프레소를 마셔댔다.
안 마실 수도 있는데 왜 마셨냐. 다 이유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함께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온 미국 친구들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우리는 프랑스어 공부하러 와서는 프랑스 음식 기행만 하다 떠났다) 우리는 다 다른 학교에서 온 학생들로, 서로 밥이라도 한 끼 같이 할 친구가 필요한 처지였다. 그때 우연히 색소폰을 부는 친구와 친해졌고, 그는 늘 에스프레소를 두 잔 마시고 하루를 시작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맛있어?”
“맛있는데. 미국 카페테리아보다 훨씬 맛있어.”
“흠…. 이게 맛있는 거야?”
“응!”
이후로는 아침마다 커피를 잘 음미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 이게 괜찮은 맛이라는 거지. 매일 조금씩 커피 맛에 길들어 갔다. 그때부터 자발적으로 커피를 사 마셨다.

커피와 나의 관계에서 단연 중요한 인물은 우재다. 왈식땅을 만들던 시절 우리는 동고동락하던 동료였고, 그는 지금 같은 수준의 커피 문화가 자리잡지 않았던 때부터 좋은 커피에 대한 기준을 갖고 있는 커피 애호가였다. 우재가 어디에서 00 커피를 사 먹으라고 하면 일단 달려갔다. 당시 혜화동 사무실 근처에 ‘보통의'라는 커피점이 새로 생겼는데, "맛있어요~!"라는 우재의 코멘트 없이도 사무실 동료들이 '보통의'를 제 집 드나들 듯 했을지 의문이다.
그는 당시 커피 문맹인 왈팀을 교화하고자(내 추측이다) 간헐적으로 커피 신문을 발행했다. 종이 귀퉁이에 조그만 글씨로 쓴 신문은 ‘라테는 고소한 라테'라는 스테레오타입에 갇혀 있었던 우리에게 산미 있는 라테의 매력에 빠져보라 권하고, 강배전과 약배전이 뭔지를 가르쳐줬으며, 워시드와 내추럴의 차이를 알려줬다. 이 신문의 힘은 강력해서 스타벅스가 맹위를 떨치던 때 스타벅스 커피를 완전히 끊게 만들었다.

입에 털어 넣자 마자 짜릿한 맛도 있지만, 시간을 두고 점차 좋아지는 맛도 있다. 커피처럼 첫입에 좋아하기는 쉽지 않지만 서서히 배우면서 좋아지는 것을 두고 ‘acquire a taste for’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맛에만 국한되어서 쓰이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맛을 습득한다는 뜻이다. 아보카도나 고수, 와인, 낫또나 김치 같은 음식을 떠올려보면 조금 더 쉽게 와닿는다. 일반적으로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매력을 느끼게 되는 음식들이다.
어찌 보면 맛이라는 표현과 습득한다는 말이 부딪히는 게 아닌가 싶다. 맛은 굉장히 직관적인 감각인데, 습득은 노력하며 배우고 익힌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냥 누리면 되는 것 아닌가 싶은데, 노력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있다. 재밌는 건 누리라는 것인지, 배우라는 것인지 어색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누리는 것과 배우는 것이 대척점에 있지 않아서 일까? 첫입에 짜릿한 맛과는 다르게, 좋아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맛은 한번 좋아하기 시작하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딱 그만큼 깊게 빠져든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다. 좋은 것은 그냥 좋아하게 될 거라는 기대, 좋아하는 것은 노력 없이 빠져드는 일일 거라는, 그런 기대 말이다. 그런데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은 아무런 노력 없이 ‘빠져드는' 일이 아니었다. 더 많이 좋아하기 위해서는 애쓰는 시간이 필요했다. 공부하고, 연구하고, 실패하고, 성공하고, 그렇게 애쓰다 보니 그걸 좋아하게 되는 거였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도, 테니스를 좋아하는 일도, 명상을 좋아하는 일도 모두 같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좋은 것도 잠시 있을 수는 있겠지만, 많은 경우 정말로 좋아하고 싶다면 노력이라는 걸 해야 했다.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고 깊이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커피를 정말로 좋아하고 싶다면 도서관에 가서 커피에 대한 책도 몇 권 읽어보고, 커피 신문도 받아 읽고,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동네 바리스타 아저씨와 얼굴을 트고 서당개의 자세로 종종 주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다양한 커피를 마셔봐야 하지 않을까? 커피에 대해서 더 많은 걸 알게 될수록 커피를 누리게 됐다. 나는 커피를 어느 날부터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 커피를 좋아하기 위해서 나도 모르게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은 아주 귀한 일이라 꽁으로는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가능한 한, 내가 지금 좋아하는 것들을 더 많이 좋아하고 싶다고 다짐한다. 새해 다짐이다.


한 와인 마스터의 말:
지금 내 입맛에 맛있는 와인이 훌륭한 와인처럼 느껴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평가가 객관적인 국제 평가 기준에 부합하지는 않아요. 여러분에게는 주관적인 품질 평가 기준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로 훌륭한 와인은 여러분의 기준을 뛰어넘는 겁니다. 배움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도, 누릴 수도 없어요.
당신에게 보르도 그랑 크뤼를 살 돈이 없다면 억세게 운이 좋은 겁니다. 축하합니다! 배움 없이는 그런 와인을 마신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게 없거든요.

❃나이브브류어스

맛있다. 정답다. 기세가 좋다. 커피머신에는 '커피의 역군이 되자!'고 쓰여 있는 곳. 역군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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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의 일기 Jiun Kim 지언의 일기 Jiun Kim

마음이 단단해진 걸 어떻게 알지?

침대에 누우면 이따금 떠오르는, 따끔한 말들이 있었다.

1

1년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30분도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힘들 만큼 통증이 심했던 시기였다. 이제껏 애정을 다해 참여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정리하기 위해 마지막 모임에 갔고, 엎드려서는 내 상태를 고백했다.

“앞으로는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두통이 심해져서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어요.”
“아.. 이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너무 건강을 과신했던 거 아니에요?”

“과신…”

순간적으로 그의 근심 어린 표정과 뾰족한 질문이 모순적인 감정을 불러왔다. 어떻게 느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로 별다른 답을 하지 못하고 말을 흐렸다.

2

지난여름 <날마다 좋아지고 있습니다>를 발간하고 처음으로 독자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함께 작업한 편집자 선생님의 제안이었다. 선생님과는 미리 대흥역 부근의 맛집에서 든든하게 쌀국수를 챙겨 먹고, 북토크 용이라며 일부러 만들어오신 포스터를 가게 문 앞에 함께 붙였다.

선생님은 시작을 앞두고 나에게 물었다.

“왜 작년에 넘어지는 일을 겪었을까요.”

“글쎄요..”

“마음 단련이 부족했던 게 아닐지.”

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멀리서 찾아와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침묵은 선물 같았다. 10명이 겨우 들어가는 작은 공간에서 서로 어디에 밑줄을 그었는지 나눴다. 참 고마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내내 내 마음의 일부는 앞선 말 한마디에 고여 있었다.

분명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왜 아팠니'라는 질문은 내겐 고통을 나누려는 따스한 제스처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마음을 돌보는 일을 하는 나는 아플 수도 없구나!’라는 상념에 빠져 스스로 더 아프게 했다.

몇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된 내 마음의 이름표는 ‘서글픔’이었다. 그 말들을 들었을 때 나는 참 서글펐다. 다음 날 영은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우스갯소리로 마음의 딜레이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핀잔을 줬다.

“그때 그 말의 의도가 뭐냐고, 왜 안 물어봤어? 일단 그 말이 아프게 느껴진다고 말하지.”
“음…. 그때는 그 말이 나한테 왜 아픈지, 아니 그렇게 아픈지도 몰랐어. 그냥 혼란스러웠어.”


처음에는 아팠던 만큼 소심한 앙갚음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다음에는 바로 잡고 싶었고, 때로는 변명하고 싶었고, 언젠가는 사과를 받고 싶었다.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든,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든 손톱 위의 거스러미같이 생생한 불편감을 주는 마음들이었다.

거스러미는 어떤가. 약간이라고는 해도 그 조그만 부위에서 오는 통증은 촘촘히, 구체적으로 나를 괴롭힌다. 그런데 막상 거스러미가 아물고 손이 깨끗해졌을 때 아픔이 사라졌다는 걸 곧장 인식할 수 있나? 거스러미가 사라지면 한 번도 불편하지 않았던 것처럼 편안함에 곧장 익숙해졌다.

시간이 흘러 나도 모르는 새 마음에는 딱지가 앉았고, 가슴에 얹혔던 말들이 천천히 소화됐다.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불편함이 싹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들이 해줬던 말이 다르게 다가와 글을 쓰고 싶어진 것이었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마음 건강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도 않은 업무를 끌어안고 있으면서 하고 싶지도 않을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의구심 속에서 이 일을 계속 해도 된다는 누군가의 허락, 혹은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얻고 싶어서 절박한 마음으로 용을 쓰고 있었다.

내 마음과 멀어져 있던 그 거리만큼, 내 몸과 멀어져 있었다. 내가 얼마나 근력 운동과 명상을 규칙적으로 하는지, 같은 시간에 자기 위해 샤워를 하고 핸드폰을 내려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지가 신체의 건강을 담보하지는 않았다. 내 몸을 돌보는 일은 어디까지나 조건적이고 제한적이었다. ‘그래, 그래. 알겠어. 괜찮아. 그런데 여기까지만.’ 더 나빠지지 않는 데 도움은 되었겠지만, 나를 돌보는 일에서조차 쫓기고 있었고 그걸 사람들은 스트레스라고 불렀다.

어쩌면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마음이 아프다는 신호였다. 100명 넘는 사람들이 모금한 프로젝트를 멈춘다는 것이, 우리 팀이 나로 인해 무언가를 그만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선택지로 여겨지지 않았다. 앉아 있지도 못하는 지경이 되어서야 멈춰야겠다는 자각이 겨우 생겨났다.

가까운 사람들에겐 내가 어떤 상태인지 너무 명명백백하게 눈에 보였을까. 그들은 나에게 실은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나 보다.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다면 그만해도 되지 않겠냐고. 일단은 좀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도 괜찮지 않겠냐고.

‘마음이 좋아졌다는 걸 어떻게 알지?’

왈이네를 만들고 나서는 늘 마음의 성장을 겉으로 드러나게 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마치 몸무게 판 위에 오르면 소수점 두 자리까지 숫자로 나타나듯이 마음도 선명하게 드러나면 좋을 텐데. 그렇게만 된다면 참 좋을 텐데. 

답은 모르고 그 질문 주위만 뱅뱅 돌았다. 심리 상담 센터나 병원에서 하듯 자가 보고식 설문으로 측정해야 하나? 혹은 일주일 중 더 많은 순간에 그저 기분이 좋아지면 되는 건가. 어쩌면 그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내리지 못했던 이유는 내 마음이 ‘건강함'을 분명하게 가리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1년동안 나를 관찰하면서, 마음이 나아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건 생각처럼 어렵지 않다는 걸 알았다. 몸의 건강 신호와 일에서의 성과, 그 두 가지면 됐다.

몸이 건강하다고 해서 마음이 건강한 건 아니지만,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은 몸의 건강으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미묘하게 더 소화가 잘되고, 잠이 잘 오고, 조금 기력이 생기고, 중간에 깨는 일이 줄고, 전반적으로 혈색이 나아지고, 숨이 잘 쉬어졌다. 어떤 비타민제 광고처럼 “꾸준히 6개월 정도 드시면 점점 효과를 느끼실 거예요.”는 반쯤 틀린 말이었다. 변화는 작지만 빠르게 나타났다.

두번째는 일에서의 성과였다. 마음이 건강해지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진전되는 게 눈에 보였다. 일에 집중이 잘 되는 것은 둘째 치고,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구분하는 것이 순조로워졌다. 때로는 무기력으로, 때로는 불안으로 소진되던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조금 더 속도 있게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네, 사실은 마음 수련이 부족했고, 나의 건강을 과신한 측면이 있었나 봐요. 지금도 마음 수련은 부족하고, 지금도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아프고 부족한 채로도 저를 너무 미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만큼은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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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의 일기 Jiun Kim 지언의 일기 Jiun Kim

진로 희망

정부24에서 초중고 시절 생활기록부를 다시 볼 수 있다길래 다운 받아보았다. 다른 것보다도 내가 원한 진로와 엄마, 아빠가 원한 진로가 하나도 겹치지 않았던 게 눈에 들어왔다. ‘진로 희망' 칸에 나는 예술가나 천문학자 같은 직업을 써냈고(심지어 성악가도 있었다.) 부모님은 판사나 의사, 기자를 매해 돌아가며 썼다. 나는 수학은 못하지만 지구과학과 생물을 좋아하는, 사회는 싫어하지만 언어나 예체능은 좋아하는 아이로, 진로 앞에서는 몇몇 직업을 빼고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

대학교 때 이과, 문과를 막론하고 여러 전공을 기웃거렸다. 결론적으로는 저널리즘과 예술을 공부했다. 저널리즘 스쿨 안에서는 커뮤니케이션학, 광고 등 다양한 갈래의 트랙이 있었는데, 한 교수님이 ‘너는 외국인이라 못할 거야'라고 말하는 바람에 오기로 기자 트랙에 다녔다. 예술 전공으로 공부를 할 수도, 작품을 만들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나를 밀어붙이는 사람이 없어서 둘 중 끝까지 하나를 택하지 못하고 엉성하게 발을 걸쳐놓은 채로 졸업했다.

졸업하고 나서는 계속 혼란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처음부터 좋은 기자가 될 자질이 부족했다. 좋은 기자가 되기에는 너무 내 목소리가 강했고 자기 구현의 욕구가 컸다. 그렇다고 좋은 예술가가 되기에는 너무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세상에 실제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내가 만들어 낸 세상의 그림이나 글인 것이 그때는 공허하게 느껴졌다. 잠시나마 학자가 되어서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하나를 쭉 파고들어 공부하기에는 곁눈질을 많이 하는데다 엉덩이가 가벼웠다.

일이라는 게 대체 뭔지, 앞으로 갈 길이 어딘지 감도 못 잡은 채로 언론고시를 준비하며 취업 준비 생활을 했다. 그 시간은 뻔하게 괴로우면서도 부정할 수 없이 좋았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그 무엇도 생산하지 못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우습게도 마음만큼은 부지런히 농사 짓는 사람처럼 보람됐다.

매일 아침 4개의 신문을 돌려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구경했고, 스터디원들과 강남역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는 오후에는 글을 썼다. 때때로 번역 알바나 과외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걸었다. 가끔은 TV쇼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나도 이런 걸 만들게 되는 건가 싶어서 기획안을 썼다. (내 기획안은 나한테만 재밌었다.) 이 시기, 꽉 채워 살고 있다는 느낌은 어쩌면 지난한 진로 고민을 풀어갈 힌트였는지도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혼자만의 자유로운 시간이 좋다. 명상하고, 생각을 골똘히 이어갈 때면 기분이 좋다. 가만히 앉아 글을 쓸 때 기분이 좋다. 글이 내가 원하는 것처럼 써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떤 형태로든 좋은 이야기를 만나면 기분이 좋다. 그 중에서도 최고는 내밀한 이야기를 눈을 마주치고 직접 듣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라면 두 번, 세 번, 네 번을 앉은 자리에서 계속 듣고 또 들어도 좋다.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그들이 혈색이 좋아져서 자리를 떠나면 기분이 좋다. 이때의 기분 좋음은 감각적인 즐거움이라기보다, 꽤 괜찮은 것을 생산하고 있다는 느낌에 가깝다.

나에게 생산적인 하루는 쓰고, 듣고, 명상하고, 걷는 날이다. 그런 하루들이 순서 하나 바뀌지 않고 반복되어도 좋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만 여겨질지 모를 이 일상이, 부디 반복되면 좋겠다. 반복되면서도 변주되는 것이 성향에 잘 맞다. 지금보다 불필요한 것들을 더 덜어낼 수만 있다면 더 덜어내고 간결하게 만들고 싶다.

지금의 업이 옷이라면(왜 이런 상상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 옷은 제일 비싼 옷도, 리셀이 될만한 옷도, 남들이 선망하는 브랜드의 옷도 아니다. 확실한 건 내 몸에 부드럽게 감기는 옷이라는 거다. 처음부터 이 옷이 내 옷인지 알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안 어울리는 불편한 옷을 이것저것 입다보니 이제서야 이게 나한테 맞는 옷이라는 걸 알 것 같다. 불안하지만 자유롭고, 함께이면서도 충분히 혼자일 수 있다. 사람들과 직접 만날 수 있어서 좋고, 그들에게 작지만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좋다. 그걸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좋다.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고, 글을 쓸 수 있어서, 글을 쓸 소재가 있어서 좋다. 좋은 일을 만났다.


꿈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주 가끔 선명한 꿈을 꾸게 되면 한동안은 그 꿈을 붙들고 산다. 영화관에 갔는데 내 자리만 없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조금도 공간이 없고, 버스를 타려는데 탈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온종일 기다리는 꿈이었다. 사회에 내 자리가 없는 것 같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던 시기였고, 내가 설 자리는 생활기록부의 네모반듯한 진로 희망 칸처럼 좁아 보였다. 그 칸에 꾸역꾸역 나를 밀어 넣기 위해서는 손에 쥔 것들을 거의 버려야만 할 것 같았다. 버리기엔 내게 너무 소중한 것들이어서 차라리 나를 버리지 싶었다.

"일에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하지마." "직장에서 너무 많은 걸 바라지마."

그 네모 칸은 어느 아이에게나--저런 말을 나르는 어른들에게도--너무 비좁은 지도 모른다. 20대에도, 30대에도, 어쩌면 그 이후에도 '진로 희망' 칸 앞에서 고민은 이어진다. 그 칸에 무언가를 써내기 위해 나의 어떤 부분을 부정하거나 ‘그런 고민은 사치’라며 스스로 내려놓을 것을 강요하는 일은 아이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네모칸이 너무 좁을 때는 조금 벗어나면 되지 않을까? 그 칸을 채우기 위해서 수많은 직업 리스트를 뒤져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면, 네모 칸에 '뒷장'이라고 쓴 뒤 뒷장에 긴 글로 풀어쓰면 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 일에 이름을 달아 네모칸을 채우는 건 마지막에서야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매뉴팩트 연희

친절하고 맛있는 연희동 커피집. 개인적으로는 라떼나 아인슈페너가 참 맛있다. 주중 오전-오후 시간을 잘 노리면 간단한 작업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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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의 일기 Jiun Kim 지언의 일기 Jiun Kim

지치지 않고 마음을 들어주기 위해서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는 업체 때문에 힘들어.”
날이 너무 덥다, 수영장에서는 무례한 아주머니를 만나 괴로웠다, 협업 과정이 힘들다, 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어쩐지 점점 영은이 선을 넘는 느낌이 들었다.
“그 힘들다는 소리 좀 그만하면 안 돼?”
내가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하지 않는 만큼 너도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불평불만 하는 걸 듣기가 당연히 괴롭지' 하고 넘겨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날은 내가 그의 부정적인 감정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가 나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게 잘못일까?
모두 일상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소소한 불평불만은 전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같이 킬킬거리고 웃어넘길 일인지도 몰랐다.
영은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해결해 주기를 바랐던 게 아니고, 그냥 그 이야기를 너한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도움이 돼서 이야기한 거거든. 네가 무슨 해결책을 주지 않아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후련해져.”
문득 가까운 이의 ‘힘들다'는 말은, 나의 번역기를 통과하면 ‘해결해 줘'라는 말로 들렸던 것도 같았다. 그의 몫을 내 몫으로 떠넘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의 힘든 마음들을 들어주기 어려웠던 건 내가 그의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는, 해결해 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나 보다.
“너는 힘들다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데, 나는 네가 힘들다고 하면 해결을 요구하는 건 줄 알았어. 이건 내 쪽의 이슈인 것 같아. 너한테 힘들다고 말하지 말라는 건 부당한 것 같네. 사실 나 스스로한테도 나는 그런 말을 해왔거든. 자꾸 힘들다고 말하지 말라고. 어쩌면 나도 힘들 때 힘듦을 나누고 싶었는지도.”
지치지 않고 마음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각자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구나. 그날 알았다.
누구나 그렇듯 과거의 몇몇 경험에서 상처받았고, 그때의 상처는 독특한 흉터를 남겼다. 나에게는 특정한 마음의 옹이가, 영은에게는 영은만의 옹이가 있어서 가끔씩 서로의 옹이가 건드려질 때면 싸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예외 없이 참 아프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갑자기 혼란 속에 빠져버리기도 하는 걸 이제는 알아서다.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걸 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나를 대면하는 시간을 거쳐 굽이 굽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모르는 새 이만치 왔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만으로 결혼 상대를 고르는 TV쇼가 있다. 미국 편에 이어, 일본 편도 나왔을 만큼 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인데 새로운 시즌이 나왔다는 소식에 넷플릭스를 켰다. 본격 데이트 시작 전 PD가 질문을 던졌다.
“결혼 상대를 고르기 위해 어떤 질문을 할 건가요?”
한 참여자에게서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심리상담(therapy)을 받아봤는지 물어봐야죠.”
옆에 있던 다른 참가자들이 깔깔거리며 손뼉을 쳤다.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우리나라 연애 프로그램에서는 저런 대답 비슷한 것이라도 언제쯤 들어볼 수 있으려나.
우리나라라면 오히려 심리상담을 받지 않은 사람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유약한 사람, 혹은 별난 사람처럼 여기는 이들도 많다. ‘결국에는 문제가 있으니까 저런 걸 하는 거 아니야?’라는 시선도 있다. 하하. 그런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면 심리적인 문제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싶다. 내 보기엔 심리적인 문제가 없다는 사람과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람이 연속체 상에 있다면 양쪽 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문제’가 있는 이들로, 특히 없다는 쪽이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조금 더 문제적이라고 본다.
심리상담을 받아봤다는 것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왜 매력적으로 느껴질까? 상담 여부가 어떤 결과를 담보하진 않지만, 심리상담의 여부가 어떤 사람이겠거니 하는 기대를 불러와서가 아닐까. 하나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일 거라는 기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심리적으로 안전한 사람일 거라는 기대가 아닐까. 내 마음을 말해도 평가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존중해 주는 사람 말이다.
그럼 결혼 상대까지 갈 것도 없지 않나. 곁을 그런 사람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

끽다느와 @kkikda_noir

강배전 넬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 사장님이 정성스럽게 커피 내리는 모습을 바에서 지켜보면 황송한 마음까지 든다. 커피는 다크하고, 묵직하고, 부드럽다. 여유로운 낮에 방문하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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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의 일기 Jiun Kim 지언의 일기 Jiun Kim

설거짓거리를 남겨두지 않는다

“김지언이요. 네, 전화번호는….”

서대문구 보건소에서 ‘대사 증후군 검사’를 무료로 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영은이 나를 빙자해 신청을 했다.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니라면 병원에 가지 않는다는 신조에 어긋나는 데다, 근 1년 동안은 나름대로 건강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기에 검사를 받으러 가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

“무슨 검사인데?”

심드렁하게 물었다.

“혈당이랑 콜레스테롤, 혈압 같은 거 재는 거야. 인바디도 하고.”

3년 전인가? 전반적으로 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좋은 편이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별문제 없겠지, 뭐. 이렇게 건강하게 사는데.”

가운을 대충 걸친 의사는 오늘 검사가 많다며 연신 투덜거리면서 작은 막대기 같은 걸 손끝에 콕 밀어 넣었다. 그 속에 바늘이 숨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작은 구슬 캔디처럼 말간 피가 맺혔다. 귀여운 스포이트로 피를 쏙 빨아들이고서는 수상한 기계에 넣었다.

“5분만 기다리세요. 곧 결과가 나옵니다.”

기다리는 동안 혈압 검사와 인바디를 했다. 키는 166, 몸무게는 5X.. 거기까지는 내가 아는 사실인데, 체지방과 근육량이 내가 기억하는 숫자와는 달랐다. 근육이 줄어들고 체지방이 늘어나 있었다. 뭐지?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혈당 수치는 좋으시고. 콜레스테롤이 조금 높게 나왔어요. 조금 더 욕심을 내본다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보는 게 좋겠어요. 술, 담배 안 하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는 것 같은데. 어머, 인바디가 좋지 않네요…. 무슨 운동을 하시는 거죠?”

“달리기하고, 요가하고요. 수영도 해요.”

“그렇게 하는 것 치고는 체지방이나 근육량이나 지표가 좋지는 않아요. 운동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확인해 봐야 하겠고요. 식단도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무슨 음식 자주 드세요?”

지표로 보는 것과 지표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를 듣는 건 무게가 다른 법이다. 약간 겁을 주는 것이 보건소의 프로토콜이었는지, 꽤 심각한 어조로 건강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일장 연설을 듣다 보니 끝날 때쯤에는 약간의 위기감이 들었다.

그는 시계를 보더니 달력을 넘기며 내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내년 3월에 언제 올지 시간 약속까지 잡았다.

“견과류 좀 드시고요.”

손에 견과류 두 봉지를 쥐여줬다. 옆에서 상담받고 있던 영은을 잠시 기다렸다. 영은이 나를 끝내 보건소에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상담해 주시는 분은 되게 열을 내면서 말씀하시더라.”

“맞지?”

문을 밀고 나갈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집에 다다를 때쯤에는 짜증스럽다 못해 분하기까지 했다. (귀에서 증기가 나오는 것 같았다.) 아니,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생활 습관에 뭐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만 하고, 뭘 하라고 정확히 말해주지도 않고! 콜레스테롤이 높아진 건 또 뭐냐. 나는 고기를 많이 먹지도 않는데! 지난 1년 동안 건강에 심혈을 기울여 온 것을 생각하면 이 실망스러운 성적표가 그간 해온 노력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억울했다.

아마도 가장 신경을 덜 썼던 식단의 문제일 텐데, 식단에 문제가 있다고는 솔직히 믿고 싶지 않았다. 어제 마셨던 달큰한 크림커피와 뺑오쇼콜라는 내 마음 속 안락한 소파였으므로. 업무 채팅창을 켜놓고 마우스를 굴리면서도 몇 가지 생각 늪에 계속 빠져들었다. 디저트를 먹더라도 많이 먹지는 않는데. 빠삐코를 3일에 나눠 먹는 수준인데. 그것도 문제가 되나? 속으로 그것도 뭐 문제가 되겠지. 빈도가 잦으니까, 하는 또 다른 목소리가 마음 한편에서 들렸다.

할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는 멍하니 유튜브를 봤다. 간헐적 단식에 대한 영상이 피드에 떴다. 간헐적 단식이라. 간헐적 단식을 하면 역시 배가 고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늘 소화기가 약했던 나에게 간헐적 단식은 도전해 보지 않은 영역이었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에는 확실히 구미를 당기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영상에서는 내가 아는 것 같았던, 하지만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한가득이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케이크와 같은 고열량 탄수화물을 섭취한 이후의 혈당 그래프였다. 뺑오쇼콜라 같은 디저트를 먹은 후 혈당을 측정하니, 빠르게 혈당이 솟구쳤다가 바닥으로 툭 꺼지며 혈당이 불안정해졌다. 오잉? 이제껏 나는 배가 고프거나 고프기 직전에 허겁지겁 열량이 있는 간단한 음식들(에너지바, 떡, 빵)을 착실히 먹어오면서 때때로 의문을 품곤 했던 것이다. 이렇게 자주 챙겨 먹는데도 왜 이렇게 금방 배가 고파지고 기력이 없지? 그런 와중에도 식습관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무의식적으로 피하려고 했나 보다.

그 영상에 따르면 이제껏 배고플까 봐 먹었던 음식들이 나를 더 배고프게 했던 걸지도 몰랐다. 어떻게, 무엇을 먹는지가 모두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었다. 정말로 알고 싶었던 적도, 없었다.

20년 전통(?)을 가진 두 가지 습관이다.

  • 배고프기 전에 틈틈이 조금씩 먹기

  • 주로 열량의 7~80퍼센트를 탄수화물로 채우기

체지방을 태우지 못하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구축해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3주 동안 정확히, 반대로 두 가지를 시도하고 있다.

  • 하루 두 끼 충분히 먹기

  • 밀가루를 줄이기

하루 두 끼만 먹는 건 꽤 힘들 줄 알았다. 신기하게도 평소 식단에 단백질을 신경 써서 채웠더니 생각만큼 허기지지도, 속이 쓰리지도 않았다. 이전에 시도 때도 없이 배고파했던 걸 생각하면, 간식이나 끼니 등 먹는 빈도가 확연히 줄어든 지금 배고프다는 말을 덜 하고 있다. 황당한 노릇이다. 굶는데 배가 안 고프다. 그러니까 굶는 게 굶는 게 아닌 게 된다. 게다가 한 끼를 줄이는 것만으로 시간과 에너지, 돈을 엄청나게 아낄 수 있다는 것도 특장점이다. 먹는 게 낙인데 한 끼가 줄어들면 서운하지 않을까 싶지만, 오히려 딱 두 끼만 먹기 때문에 더 맛있게 먹게 되는 점도 만족스럽다.

반면에 밀가루는 줄이는 건 생각보다 훨씬, 아주 어려웠다. 디저트류에는 거의 항상 밀가루가 들어가는 데다, 파스타나 비빔면, 만두, 부대찌개… 내가 좋아하는 거의 모든 음식에 밀가루가 들어 있는 것은 비극이었다. 밀가루를 아예 먹지 않은 며칠 동안 서서히 풍경이 잿빛으로 변하길래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비건' ‘글루텐프리'라는 이름이 붙은 디저트로 설탕, 버터, 밀가루가 몽땅 들어간 디저트를 대체할 수 없다. 이건 나에게 얼마 남지 않은 고집스러운 신조다. (그것들은 '가짜'다!) 그러니 계속 먹되, 더 아껴서 귀하게 먹기로 한다.

추석 때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떠나는 당일은 정신없을 테니 당장 넣을 수 있는 옷가지들은 가방에 미리 넣어두고, 자네를 맡아줄 갓파더와 갓마더(그들은 부부다)를 위한 작은 선물들을 샀다. 떠나기 1일 전에는 집 청소를 했다. 먼지를 털고, 청소기를 돌리고, 냉장고를 비우고, 남은 재료를 다 쓰기 위한 몸부림으로 희한한 요리를 해 먹었다. 떠나는 당일, 이제 집을 나가려는 참이었다.

“어? 설거지가 있네.”

컵과 접시 두어 개였지만, 설거짓거리를 싱크대에 남겨놓고 가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수챗구멍은 비워놨으니까 괜찮아.”

“아니야, 해두고 가는 게 좋겠어.”

남은 설거지를 마저 하고, 행주를 꼭 짰다.

설거짓거리를 남겨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쓰면서 저항감이 들었다. 그보다는 설거지를 싱크대에 남겨 두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에 맞지 않는다. 어차피 해야 할 설거지, 바로바로 해두는 것이 좋다. 굳이 걸리적거리는 것을 남겨두지 않는다. 마음에 밟히는 과제들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확실히 그렇다.

요즘은 몸에 남은 설거짓거리를 하나둘 씻어내는 기분이다. 물기 하나 없이 정돈된 싱크대처럼 내 몸이 대체로 가뿐하게 비어 있으면 좋겠다. 달릴 때, 요가할 때, 춤출 때 몸이 나를 붙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날쌔고 가벼웠으면 좋겠다. 대체로 산뜻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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