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indful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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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일기 Jiun Kim 유진의 일기 Jiun Kim

여름의 물

요즘 사주명리를 공부하고 있다. ⟨자신을 돌보는 사주명리: 운명학으로 삶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이름에 끌려서 8주짜리 수업을 결제했다. 원래 관심 있는 분야였는데, ‘자신을 돌보는’, ‘삶을 사랑하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나를 돌보는 다양한 경험을 해왔지만, 사주명리가 나를 돌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9년쯤 처음 본 사주 상담에서 들었던 말 한마디로 괴로움의 문턱을 넘겼던 걸 보니 틀린 말도 아니다. 

“지금 많이 괴롭죠? 어려운 터널의 끝이니, 조금만 더 견뎌봐요.”

그 시절의 나는 정말 힘들었다. ‘힘들었다’라는 말로 압축되는 게 억울할 만큼. 눈물 뚝뚝 흘리며 집에 가던 날도 많았고, 이렇게 못난 사람인데 살아서 무얼 하나, 내가 그동안 이뤄온 성취들도 다 가짜구나, 같은 생각을 했던 때이니, ‘어려운 터널의 끝'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견디게 해줄 만했다. 그 터널의 끝이 보일 때쯤 명상을 만나 많이 회복되었으니 그 선생님의 말씀은 내 삶의 구명줄 중 하나가 된 셈이다.

그전까지 인터넷에서 재미로 사주를 본 적은 있지만, 상담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저 오행이 다 있으니 특별하게 잘하는 것은 없어도 꽤 괜찮은 사주일 것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상담에서 들은 이야기는 차원이 달랐다. 친절하고 쉽게 풀이해 주셔서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자세히 기억난다. 그중 내 사주가 ‘여름의 물'이라는 발견 또한 의미가 컸다. 

“여름의 물이라서 바쁜 거예요."

“여름의 물이 어때서요?”

“여름의 물.. 여름에 얼마나 더워요.. 그래서 사람들은 물이 필요한 거죠. 바로 유진 님이요.”

여름의 물은 쓰임이 많아 바쁘다고 한다. 그제야 의문이었던 ‘나는 왜 이렇게 항상 바쁠까’가 해소되었다. 바쁘단 말 참 싫어하는데도 ‘바쁘고 힘들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삶이었다. 아무리 속도 12 러닝 머신에서 내려오겠다고 비장하게 말해도, 누군가 나에게 잠깐만 속도 15 러닝 머신에 타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나의 쓸모에 감격해 웃음과 따봉을 날리며 러닝 머신에 탑승한다. 그뿐만 아니라 재밌고 의미 있는 일에 무작정 달려들고, 문제라고 생각되는 일도 잘 지나치지 못한다. 그야말로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의 전형이다.

바쁜 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들으니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내 잘못이 아니구나, 그냥 이렇게 태어난 거구나. 그렇다면 요즘 다시 떠오른 의문은 ‘그렇다면 어떻게 바쁨과 휴식을 균형있게 다룰 수 있는 것인가?’였다. 마침 일곱 번째 수업의 주제가 ‘균형과 조화 찾기’였다.

수업 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나는 인성과 재성이 많은데, 그에 비해 식상이 약하다는 것이다. 능력을 모두 결과로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이어서, 삶에 있어서 균형을 맞추려면 목적 지향적이지 않은 취미가 필요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취미도 쓸모(결과)가 있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았다. 10년째 배우고 싶은 도예를 시작하지 못한 이유도 결과로써 내 인생에 어떤 쓸모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나의 취미인 명상, 요가, 사주명리 같은 것은 바쁜 삶에서 정신적 산책을 만들어내어 균형을 맞춰주니 무척 좋다고 이야기 해주셨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왜 자꾸 취미로 도망가고 싶을까 싶었는데, 사실 살고자 하는 나의 무의식적 도피였다.

몸과 정신도 음양 안에 있다. 몸이 편하면 정신이 괴롭다. 반대로 정신이 편하면 몸이 편치 않다. 모르겠다고? 과거 농업 시대에는 농사를 짓느라 몸이 힘들어도 마음은 풍요로웠다. 현대인들은 어떤가? 몸은 편하지만 정신적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오죽하면 감정 노동이 생겼겠는가. 음양 관계란 이런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다. 낮과 밤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 이것이 자연의 원리이며 생명의 원리다. 
⟨46p. 다르게 살고 싶다. 박장금 지음⟩

삶을 긍정하는 감각은 참 소중한데, 나의 힘만으로는 잘 일궈지지 않는다. 이런 일정을 만들지 않으면 자꾸만 내가 잘하는 건 도대체 뭐지? 아니 잘하는 게 있긴 한 건가? 생각의 늪에 빠진다. 현대인들은 자신을 너무 크게 생각해서 괴롭다고 한다. ‘자아를 가볍게 할수록 행복하다'라는 말씀이 수업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에고라는 적⟫,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책이 생각나서 오랜만에 다시 펼쳐보려고 한다.

최근에는 일 년에 한 번꼴로 사주를 보았는데 늘 남이 해주는 해석만 듣다가, 왜 이런 해석이 나왔는지 스스로 살펴보니 재밌는 시간이었다. 8주라는 시간 동안 사주명리라는 방법론으로 내가 힘든 이유를 파악하고, 그걸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무엇이든 자신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은 결국 ‘나를 돌보는 시간'이 아닐까. 선생님 말씀대로, 무엇이 되고자 하지 말고 현재에 머무르며 주어진 일과를 해내려고 한다. 그리고 도망간다고 자책하지 말고 조금 더 편안하게 취미 생활을 즐겨야겠다.

📌 카페 공유

보문동에 있는 작은 카페. 왜색이 짙어진 가게들이 많아지면서 어쩐지 그런 가게는 피하게 되었는데, 카페 공유는 조금 다르다. 그저 겉햝기식 왜색이 아니라, 진짜 일본에서 얻었던 무엇인가가 너무 좋아서 이런 스타일의 카페를 하는구나 싶다. 분위기도 커피 맛도 좋다.

쓴 사람 |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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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12의 러닝 머신에서 내려오기

커리어를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것이 속도 12 러닝 머신에 올라타는 것인 줄 그땐 미처 몰랐다. 그저 성능이 좋아 보이고, 디자인이 예쁘고, 커스터마이징되어 있길래 택했다. 분명 빠르게 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더 빨리 뛰라고 채근했다. 러닝 머신은 동료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내가 잠시 속도를 늦추면 옆 사람이 피해를 봤다. 내 자세는 금세 무너졌고, 숨이 차서 내려왔다. 

러닝 머신에서 내려오지 않고선 온전히 쉴 방법이 없었다. 충분히 숨을 고르고, 이내 다시 올라탔다. 이번에는 더 오래 타겠어, 다짐하며. 성능이 떨어지지만 디자인이 예쁜 러닝 머신, 디자인이 별로여도 성능이 최고인 러닝 머신… 하지만 이내 속도를 버티지 못하고, 매번 금방 내려오게 되었다. 10년 동안 같은 러닝 머신을 타는 동료가 부럽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는지 자책했다.

어쩌다가 속도 12인 러닝 머신만 쏙쏙 골라서 탔지? 어쩌면 유년 시절의 경험 때문에 그 방법밖에 몰랐던 게 아닐까? 나는 초등학생 때 입시 미술에 뛰어들었다. 6학년 때는 학교에 출석하지 않고 화실에서 12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오전 9시에 가서 밤 10시쯤 집에 돌아오는 365일을 보내고, 밥은 늘 30분 이내에 먹어야 했다. 4시간에 그림을 한 장 완성할 때마다 A+부터 C-까지의 점수를 받으며 평가를 받았다. 매일 밤 나에게 남는 건 3장의 그림과 3개의 점수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까지 총 8년의 세월을 그렇게 보냈다.

그때도 그것들이 쉽진 않았다. 적응을 하지 못해서 5학년 땐 화실을 옮겼고, 중학교 2학년 때는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자퇴했고, 고등학교 3학년 땐 실기 수업을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매번 다시 돌아갔다. 그때의 나는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어서 돌아갔던 걸까? 아니면 마음과 체력을 회복해서 돌아갔던 걸까? 어린 나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단 지구력이 부족한 나의 탓을 했다.

하지만 더는 이 속도로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속도 12에 올라타면 일밖에 생각하지 못했는데, 내가 일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닌 걸 깨달았다. 물론 일은 내 삶의 중심축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나에게 회사로부터의 독립은 속도 12의 러닝 머신에서 내려오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나만의 러닝 머신을 만들어서 타기로 결심했다. 이젠 내가 속도를 낮추거나 올릴 수 있고, 원한다면 잠깐씩 내려와 쉬었다 다시 탈 수 있었다. 물론 이전처럼 여러 러닝 머신에 연결된 상황이 아니어서, 내가 속도를 내지 않으면 멈춘다는 사실이 때론 무섭게 느껴진다. 그래도 누군가의 속도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나만의 속도로 갈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는 “그러기엔 아직 우리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아?”라고 반문한다. 누군가는 “맞아, 나도 한국의 속도에 정말 지쳤어.”라고 공감한다. 다행히 나의 준거 집단은 자신만의 속도로 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문득문득 준거 집단보다 넓은 서울을 바라보면 영락없는 낙오자 모양에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서울보다 더 넓은 시야의 세상을 바라본다. 전체의 평균 속도는 5~6쯤이란 걸 깨닫는다. 우린 스스로 더 빨라야 한다고 자책하며 러닝 머신에서 자꾸 나가떨어지는 선택을 한다.

물론 생계의 문제 앞에서는 겸손해지고 절박해진다. 속도가 좌절감이 되어 나를 삼키지 않도록 부단히 달려본다. 이렇게 달리고 있다 보니, 내가 단순히 속도를 늦추고 싶어서 러닝 머신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 에너지를 누구와 무엇을 모색하며 어떤 희망과 목적을 갖기 위해서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지내고 싶었다. 무엇이 중요한 일, 기쁜 일인지에 대한 ‘참조 체계’를 바꾸고 싶어서 한 선택이었다.* 이러한 선택을 하려면 기존과 같은 속도로는 불가능했을 뿐이다. 지금은 나에게 알맞은 속도를 찾으며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하려고 한다.

📌 로우 커피 스탠드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커피숍. 테이크아웃 전문점인데, 유독 피곤하거나, 잠을 제대로 못 잤을 때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사서 작업실로 출근한다. 그러면 컨디션도, 기분도 조금은 나아진다.

*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김현미 지음, 반비, 2021)

쓴 사람 | 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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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일기 Jiun Kim 유진의 일기 Jiun Kim

평소에 침대에 눕자마자 자거나, 깊게 잠드는 편은 아니었다. 예전에 친구 네 명과 여행을 가서 둘씩 더블베드에 나눠서 잔 적이 있는데, 함께 침대를 사용했던 친구가 자신이 뒤척거릴 때마다 내가 깨서 힘들었다고 했다.

빛 차단을 위해 수면 안대를 끼고, 작은 소리에도 쉽게 깨서 귀마개를 낀다. 호기심에 샀던 입벌림 방지 테이프까지 했을 땐… 이렇게까지 하면서 잠을 자야 하는 내가 우스웠다. 숨을 쉬어야 하는 콧구멍을 빼고, 얼굴에 뚫린 곳(눈, 귀, 입)을 다 막는 게 웃겼다.

이런 내가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아주 깊게 잠드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작년 6월 사정상 친구네 집에서 잠깐 지낼 때, 꽤 큰 소리가 나도 깨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수면 패턴이 바뀔 수 있지? 신기해서 주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각자 짐작 가는 이유를 말했다. 그중 가장 공감 가는 이야기를 마침 나와 여행을 같이 갔던 친구가 했다.

“너 제리(반려견) 때문에 그랬던 거 아니야?”

친구는 내가 그동안 제리를 신경 쓰면서 자느라 숙면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짚었다.

제리가 살아있을 적에는 줄곧 나 혹은 엄마와 함께 침대에서 잤다. 우리는 밤마다 제리를 데려가 함께 자기 위해 티격태격했다. 제리는 가끔 새벽에 깨서 화장실에 가고 싶어 했고, 밥을 더 먹고 싶어 했고, 어떨 땐 토(급하게 먹은 저녁이 체해서)를 했다. 엄마는 잠들면 아무 소리도 못 듣는 편이라 내가 제리의 발자국 소리를 듣자마자 깨서 새벽의 시간을 보살폈다. 그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잠귀가 밝아졌나 보다. 나에겐 돌봐야 할 존재가 있으니까.

제리가 죽기 전까지는 살면서 죽음을 맞이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큰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수능 직전이어서 가족들이 장례실에 못 가게 했다. 시간이 지난 후, 시험 때문에 친척의 장례식을 못 간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물론 정신없던 그때는 알겠다고 했다.

삶의 끝에 죽음은 당연히 함께 하는 것인데, 경험한 적이 없으니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제리가 18살 노견이라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주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이별은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그 해 여름은 무척 바빴다. 퇴사하고 이제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일을 받았다. 매일 10시간씩 일주일 내내 일하는 스케줄이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꽤 들떠있었다. 아침과 밤 시간을 쪼개 제리를 보며, 어딘가 모르게 힘이 없어 보여 부모님께 병원에 데려가길 부탁했다.

하필 연휴가 껴있고, 가족 모두 바빠서 병원에 가는 게 하루 이틀 미뤄졌다. 그땐 그게 골든타임일 줄 상상도 못했다. 제리는 약 한 달 동안 치료를 받았다. 살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거 하나라고 믿고 견디며 시간을 통과했다.

제리는 엄마의 퇴근 시간인 오후 3시, 집에 도착해서 잘 있었냐는 인사를 하자 엄마를 기다렸던 것 마냥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숨을 거둔다’는 문장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

그 이후로 오랜 시간 내 숨이 무척 어색하게 느껴졌다. 내 숨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고 불편했다. 일상으로 돌아와 요가를 하던 어느 날, 사바아사나 때 들리는 나의 숨소리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 일 년하고도 반년이 더 지났다. 더 이상 사바아사나를 할 때 울진 않는다. 잠을 깊게 푹 자게 되었고, 매일 숨을 의식하게 되었다.

📌 카모플라쥬 커피

뚝섬역에 작업실을 얻은지 1년이 되었는데, 이제서야 알게 된 내 취향과 완벽하게 부합하는 카페. 깔끔한 인테리어와 잘 어울리는 단정한 음악. 맛있는 커피. 혼자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좋고, 짧은 미팅을 하기에도 좋다.

쓴 사람 | 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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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보다 사람을 사랑하자

오랜 시간 일을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하지 않거나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답답해하고 미워하기도 했다. ‘그 사람은 도대체 왜 그렇게 일을 할까?’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힐난했다. 그러다 보니 조직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 이어졌다. 미워하는 마음은 결국엔 나를 괴롭게 했다. 대단히 웃긴 점은 그런 나라고 일을 뭐 얼마나 잘 했냐는 거다. 비슷하게 했거나, 어쩌면 더 못했다. 그때는 내가 그 사람보다 그 일을 더 사랑하니,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직장인 생활을 마무리한 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지니 평화가 찾아왔다. 어떻게 하면 이 행복을 유지할 수 있지?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생명’도 ‘감정’도 없는 일을 그렇게까지 사랑할 필요가 있나?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살아있고, 상처도 받는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실수와 잘못된 일은 해결 가능하다. 그래서 처음으로 일보다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조직에서 나왔지만, 직무 특성상 다양한 팀과 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전처럼 누군가의 태도에 아쉬운 마음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왜! 자진해서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밖에 일을 하지 않는 거야?” 원망스러웠다. 특히 괴로웠던 것은, 그 사람 때문에 주변에 있는 동료들이 힘들어하고 지쳐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밤마다 되뇌었다.

‘일보다 사람을 사랑하자.’

이 문장은 한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나아질 수 있는지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줬다. 우선 동료를 같이 일하는 사람보다는, 일로 인연이 맺어진 사람이라고 인식하고자 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따로 만나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개인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미워하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물론 나의 해결 방식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바로 ’솔직하지 못했던 것‘. 돌이켜보니 그 사람이 이해되었다면, 그 이후에는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용기 내어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그 사람은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서 그 일을 계기로 나아졌을 테고, 나도 다른 동료들에게도 덜 미안했을 것 같다.

여기에서 나는 계속해서 ‘누군가’라고 지칭했지만, 사실 그 ‘누군가’는 ‘내’가 될 때도 있었다. 내가 자진해서 참여한 프로젝트에 내가 원했던 만큼 최선을 다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무척 밉고 자존심 상했다. 하지만 그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고, 그때는 그 정도가 나의 최선이었다. ‘열심’과 ‘최선’은 주관적인 척도이며,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일하려고 모인 직장에서 일보다 사람을 사랑하자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 같다. ‘일하려고 모인 직장’ 정의도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하지만 개인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된다면, 일을 제대로 못하는 누군가를 무작정 미워하는 것보다는 이해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더 지속 가능한 팀 빌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리커버리 커피바

작업실 근처에서 가장 문을 빨리 여는 카페(오전 8시). 운이 좋으면 세마리의 강아지를 만날 수 있다. 강아지와 신나게  인사하다 보면 커피가 나와있다.

쓴 사람 | 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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